충녕대군 왕이 된 과정에 대해 알아봅시다

충녕대군 왕이 된 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충녕대군은 태종의 첫째 부인의 셋째 아들로 후에 왕이 되고 세종대왕이 된 분이십니다. 태종은 원래 충녕대군이 아니라 첫째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봉했는데요. 양녕대군 관련해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위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봉했습니다. 충녕대군은 세자가 된 지 2달 만에 왕이 되어 세종으로 불립니다.

 

 

위의 그림은 태종과 충녕대군 관련 가계도입니다. 첫째 부인의 아들들은 ‘대군’으로 불리고 둘째 부인의 아들부터 ‘군’으로 불립니다.

태종이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는 적장자 왕위계승을 태조가 지키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태종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적장자 왕위계승을 지키는 것이 지난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화가 됩니다. 이런 이유로 태종은 왕이 된 후에 바로 적장자인 양녕대군을 10살 때 세자로 앉힙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양녕대군이 학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여자를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여자 문제로 사고를 많이 쳐 태종과의 관계도 틀어질 정도였습니다.

 

아래는 양녕대군이 친 사고들에 대한 사료입니다.

태종 10년 “세자가 몰래 기생 봉지련을 궁중으로 불러들이다.”

태종 11년 “세자우빈객 이내가 세자에게 여색과 매를 멀리할 것을 진언하다.”

태종 12년 “세자가 병을 핑계로 서연에 참석하려 하지 않아, 내시 김문후가 눈물을 흘리며 강 권하다.”

태종 13년 “세자가 평양 기생 소앵을 동궁에 불러들여 놀아난 문제로 판내섬시사 김매경, 판 예빈시사 박수기 등을 파직시키다.”

태종 14년 “세자가 밤에 창기를 들이다.”

태종 15년 “상왕(정종)이 가까이했던 기생 초궁장이 세자와 사통했으므로 내쫓았다.”

 

양녕대군이 실록에 기록될 정도의 사고만 위의 것들입니다. 실록에 기록된 여색 관련 기록은 더 있습니다. 양녕대군의 가장 큰 사건은 전직관리 곽선의 첩인 어리와 간통하여 아기도 갖은 것이고요. 궁궐 한쪽에 개구멍을 파서 거기로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양녕대군이 저렇게 사고를 계속 치고, 공부는 않는 통에 태종은 자신의 행동에 정당화가 되는 적장자 왕위계승을 포기하고 똘망똘망 하며 학업에도 열심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대신 앉힌 것입니다.

 

양녕대군은 세자 생활을 14년간 하고 폐위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 충녕대군이 2개월간의 세자 생활을 하고 세종대왕이 되십니다.

 

충녕대군의 본명은 ‘이도’입니다. 출생은 1397년이고 특기는 독서를 굉장히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학업은 사서삼경에 정통하고 책만 많이 읽으신 것이 아니라 악기나 그림 등 다방면에 능통하셨다고 합니다. 성격도 어질고 깊은 효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상 양녕대군이 사고를 많이 쳐서 세자에서 폐위되고 셋째인 충녕대군이 왕이 되었다는 내용의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부자지간 세습 체계는 여러 가지로 모자란 사람이 중요 직위에 앉을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능력 있고, 비리는 안 저지를 정도의 인성 바른 사람이 주요 직위에 앉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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