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주 가 변절자였는지 생각해봅시다

신숙주 가 변절자였는지 생각해보는 자리를 갖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신숙주는 모두 아시다시피 수양대군이 반란하여 세조라는 왕이 되게 한 공신 중 하나입니다. 신숙주는 세종 시대에 등용되면서 세종의 총애를 많이 받기도 했는데요. 그런 세종의 부탁을 저버리고 수양대군 라인에 서서 어린 왕 단종을 죽이는 데 앞장을 선 인물입니다.

 

위의 그림은 신숙주 초상화와, 해동제국기 책 모십니다.

신숙주는 1417년생이고요. 나주 출신입니다. 관직은 세조 시대에 영의정 13년 했고요. 좌의정 3년, 우의정 1년, 병조판서 2년, 도승지 2년 등을 했습니다. 신숙주는 사실상 세조 시대에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발휘했던 사람입니다.

 

 

신숙주의 특이사항으로는 21세에 과거 시험인 생원시, 진사시에 동시 합격했습니다. 당시 과거급제 첫 합격 평균 나이는 30대 중반인 것을 고려할 때 굉장히 빠른 합격이었습니다. 22세 문과 3등으로 급제한 수재이고, 집현전 학사로 훈민정음 창제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신숙주는 집현전에서 밤새 공부를 하여 세종대왕이 잠깐 잠든 신숙주에게 용포를 덮어 씌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그만큼 세종에게도 총애를 받은 사람입니다.

 

신숙주는 우리가 흔히 아는 충성의 아이콘 사육신 성삼문과 계유정난 때까지만 해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성삼문과 신숙주 둘 다 어린 단종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는 김종서 같은 권신을 제거하는 데는 뜻이 통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난공신은 계유정난이 성공하고 그것에 대한 공이 있는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한 것인데요. (1453년) 거기에 신숙주가 공신으로 이름이 있고, 성삼문도 공신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신숙주와 성삼문이 갈라지는 데는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사항에 대한 의견 때문입니다. 성삼문은 수양대군이 왕이 된 데에 대한 반감을 품고 단종 복위 운동을 하는데요. (1456년) 실패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렇게 죽은 6명을 사육신이라고 합니다. 이 단종 복위 운동을 하던 사육신은 수양대군과 함께 신숙주도 죽일 명단에 올려놨었습니다.

 

세종에게서 그렇게 총애를 받으며, 단종을 배신하고 수양대군 라인에 서서 승승장구한 신숙주를 대부분 변절자로 아십니다. 숙주라는 쉽게 변하는 나물도 원래 이름은 녹두나물이었는데요. 금방 변한다고 해서 숙주나물로 이름이 바뀔 정도로 신숙주는 변절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세조의 국정 운영방식은 세종 때의 정책을 이어서 유지 발전시키려고 했는데요.핵심 멤버가 바로 신숙주입니다. 세종의 정치는 우리나라의 모든 제도를 새롭게 만들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세종 때 우리나라에 많은 제도가 만들어지는데요. 이것을 하나로 통일해서 국가 통치 규범으로 만드는 사업이 경국대전이라는 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 경국대전이란 책의 첫 삽을 뜬 것이 바로 세조입니다.

 

세조 때 공법도 시행하는데요. 일정한 토지 면적에서 일정한 곡식의 양을 거두는 것을 기본으로 해서 세금을 매기는 것이 공법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생산량을 확정해야 하는데 옛날 기술로 생산량을 확정하는 것이 어려운 것인데요. 중간에서 장난질도 많이 치고요. 이것을 세조 때 전국적으로 공법을 하기 시작한 것(함경도, 평안도 제외)입니다.

 

세조가 처음 시작한 것이 직전법이란 것이 있는데요. 직전법은 수조권이라고 해서 토지로부터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리 관련 사항입니다. 그전에는 관리가 세금을 거두는 것뿐만 아니라, 관리의 미망인이나 미성년 자녀까지 세금을 거두기도 했는데요. 이것을 딱 관리만 세금을 거둘 수 있게 한 것이 직전법입니다. 당시 사대부들의 반대가 심했는데요. 세조가 밀어붙입니다. 이것이 고려 시대부터 조선 세조 때까지 역사적으로 봤을 때 농민들에게 거두던 세금 관련 장난질들을 많이 없애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직전법이 징검다리로 작용하여 성종 때는 관수관급제라고 해서 나라에서 직접 조세를 거두는 제도가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세조 관련 정치들의 핵심이 신숙주입니다.

 

세조 시대에 압록강 두만강 일대에 여진 세력과 대립하고 있었는데요. 당시 조정에서 의견이 통일 안 돼 군대를 동원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세조가 신숙주에게 이 일을 맡기는데요. 세조가 신숙주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신숙주가 철수하려면 철수하고, 공격하려면 공격하라고 했는데요.

 

신숙주가 출정하여 여진 세력을 크게 정벌하였습니다.

 

신숙주는 1443년 일본에 사신으로 가는데요. 배 타고 동해를 건너야 하는 길이라 당시로서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신숙주가 병을 앓다가 다 낫자마자 간 것입니다. 일본 길이 위험해서 그냥 병을 핑계로 안갈 수 있었는데 갔습니다.

 

일본을 다녀온 후 신숙주는 ‘해동제국기’라는 책을 저술합니다. 해동제국기는 일본의 정치, 외교, 사회, 풍속, 지리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조선 초기 조선은 북쪽 지역 관련 정보는 많았는데요. 일본 관련 정보는 부족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정도 일본에 대한 정보의 갈증을 해소해준 책입니다. 지금도 조선 초 한일 외교 관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사용됩니다.

 

신숙주의 변절자 관련 사항에 대해 생각하려면 다음의 사항을 살펴봐야 합니다. ‘아버지를 잘 만나 왕이 된 것이 정당한 것이냐’인데요. 이런 문제는 이미 전 세대인 정도전도 한 것입니다. 국가 권력을 움직이는 힘은 핏줄이 아니라 능력에 의해 결정되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왕에게 무조건 충성해야 할까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왕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애민 정신’으로 정치를 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숙주는 애민 정신으로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종을 보필해야 할지, 능력 있는 수양대군과 함께 정치를 해나가야 할지 선택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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