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플 전쟁의 영향

콘스탄티노플 전쟁의 영향에 대해 말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처음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왕인

콘스탄티누스 1세가 세운 도시인데요. 기독교의

수도 이었습니다.

전쟁은 1453년 시작 되었는데요 이 전쟁으로 기존의

전투방식이 바뀌었고 서양은 동양과 육지로 무역을

할 수 없어 바닷길을 개척합니다. 그럼으로 써 인도

희망봉으로 가는 바닷길을 열었고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콘스탄티노플의 위치와 콘스탄티노플 중심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 및 후추의 사진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은 당시 향신료 무역의 중심지 이었는데요.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었습니다.

인도남부에서 유럽으로 가는 후추가 매년 1천 톤에 달했

는 데요



이런 중요성으로 인해 이슬람세력의 오스만 제국.

메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접수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킵니다.

 


위의 사진은 메메트 2세 초상화와 그가 사용한 대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 전쟁을 하는 그림입니다.

당시 메메트 2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하나의 제국과, 하나의 종교

하나의 왕조만 존재해야 한다.‘

콘스탄티노플은 철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성벽의 길이는 약 6km 높이는 30m에 달했습니다.

그 성벽은 한세기동안 정복된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성벽을 메메트 2세는 대포로 격파합니다.

무겁고 큰 돌덩어리를 포탄으로 만들어 대형포탄을

계속 날렸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철옹성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은 무너지고

전쟁에서 성벽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됩니다.

 

이 후 콘스탄티노플의 이름은 이스탄불로 바뀌었고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은 세상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름도 아야 소피아로 바뀌었고요

이에 서양인들은 동양으로 가는 새로운

무역 로를 찾아야 했는데요. 그것은 뱃길입니다.

서양에서 뱃길에 집중함으로써 아메리카와 인도. 동양을

포함한 세계와 연결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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