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의 진실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일본군 위안부 의 진실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일단 용어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예전에는 ‘정신대’라는 말도 사용했고, ‘종군위안부’라는 말도 사용하였습니다. 정신대(挺身隊)라는 말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천황을 위해) 자진해서 몸을 바치는 무리’란 뜻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라서 정신대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위의 사진은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발표를 하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모습입니다.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이란 법령이 있는데요. 일제가 군수공장 등의 노동력 충당을 위해 여성을 강제 징용하던 제도입니다. 이때 공장에서 일하신 여성분들과 일본군 위안부와 분리해서 표현해야 해 정신대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은 추후에 알았습니다.

 

 

‘일본군 위안소’란 말이 처음 나온 것이 1931년이고요. 본격화돼서 사용된 게 1937년 이후로 보고 있습니다. ‘근로정신대’(공장에서 일하신 여성분들)는 1944년에 나온 단어입니다.

 

또 ‘종군위안부’라는 말도 있는데요. 종군(從軍)이란 말의 뜻은 ‘군대를 (스스로) 따라 전쟁터로 나감’이란 뜻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자발적으로 전쟁터를 따라다닌 것이 아니므로 종군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현재는 그냥 ‘위안부’로 사용하는 것 적절한 어휘입니다.

 

위안부를 영어로 번역하면 ‘comfort women’이 되는데요. 이는 위안을 주는 여성이란 뜻입니다. 이것도 올바른 번역은 아닌데요. 정확한 표현은 ‘sex slave’로 지칭하는데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한테 직접 저런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 있어 조심히 사용합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일본은 조선뿐만 아니라 동남아 지역으로도 영토를 넓게 점령하고 있었는데요. 그 넓은 지역에 일본군 위안부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상하이에만 160개 이상 되었습니다.

 

 

위의 지도가 일본군 위안부 지도인데요. 빨간색 점이 위안부가 있던 곳을 표시한 것입니다. 굉장히 넓게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는 위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인 여성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요. 많은 아시아인 여성과 서양인 여성도 있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를 설치한 이유 4가지는 아래입니다.

1. 강간방지 – 안정화되지 않은 지역에서 일본군에 의한 강간이 발생하면 점령지 사람들의 반발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인 점령지에서 여성을 차출해 불안정한 지역 일본 군인의 성노예를 만들어 불안정한 정렴지를 더 안정적으로 가지려는 노력이라고 합니다. 근데 저래도 강간은 계속 발생했다고 합니다.

 

2. 성병 문제 해결 – 역시 일본군인 이 아무 여자나 강간하는 대신 성병 관리를 하는 여자에게서 욕구를 해결하게 해 성병을 잘 관리하려는 의도입니다.

 

3. 일본 군인에게 ‘위안’ 제공

 

4. 군사 기밀 유출 방지

 

일본군 위안부를 일본이 운영하게 된 데는 기본적으로 일본이 오래전부터 공창제를 운용한 관습 덕분도 있습니다. 공창제는 국가가 유곽을 만들고 관리한 것인데요. 17세기부터 일본 내에 그런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군 위안부도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2000년대 정도까지 일본군 위안부는 이슈화되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그동안 여성의 성적 순결을 요구하는 가부장적인 문화 덕분입니다. 요즘 들어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되면서 피해자 1분 1분이 이어지고 해서 이슈화가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계셨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은 위안부 시절 모두 다른 곳에 있던 분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있던 곳의 유일한 생존자가 본인밖에 없으신 분들입니다. 이런 이유로 할머니들이 나 이외의 다른 피해자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셨습니다.

 

아래는 일본군 위안부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는 문서의 목록입니다.

 

바타비아 재판 25호 사건 중 –1947년-

“200여 명의 부녀를 ‘위안부’로 오쿠야마 부대의 명령에 따라 발리섬에 데리고 들어갔다.”

 

‘군 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일본군 문서) -1938년-

“위안소 설치, 헌병 및 경찰 당국과 연계”

 

 

위의 사진은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모습입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중

“일본군 남방파견 사령부가 조선군사령부의 협력을 받아 업자를 모집하고 업자들이 4차 위안단을 모집했다.”

 

 

아래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쟁점 사항들입니다.

1. 국가가 개입하지 않았다.

: 군인은 민간인 업자를 고용해서 민간인 업자가 일본군 위안부를 운영했습니다. 그렇다고 나라가 운영 안 한 게 되지 않습니다.

 

2. 강제 동원은 없었다.

: 할머니들께 공장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간호사가 필요하다. 가정부로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 해서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안전하게 현장으로 가고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다고 강제 동원 안 한 게 되지는 않습니다. 공갈하고, 사실을 안 후에는 돌려보내 주지 않은 것입니다.

 

 

3. 일본은 사과했다?

1993년 8월 4일 일본군 ‘위안부’을 인정한 고노 관방장관이 사과했습니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일본 식민지배를 반성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저 두 발표 모두 범죄 사실 인정, 법적 책임, 피해자 배상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의 자민당이 집권하게 되고 저 두 발표로 사과했다고 우기면서 다시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언급을 한국에서 못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베 신조는 2차 세계대전 전범들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계속 참배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요구는 아래 3가지입니다.

1. 일본 국가가 범죄 사실을 인정하라.

2. 책임지고 배상하라.

3. 역사 교육을 하라.

 

이렇게 일본이 끝까지 사죄하지 않는 이유는 천황제를 가지고 있는 시스템 덕분입니다. 천황은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 같은 오류를 저지를 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해방 후 한국이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면 일본은 전범들을 청산하지 못한 잘못이 있습니다.

 

현재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로비를 미국에 하고 있습니다. 2001년부터 최근까지 최소 1100만 달러(우리 돈 130억 원) 이상을 로비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성과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미국 고등학교 교사용 참고서에 2015 한일합의를 담는 데 성공했습니다.

 

 

위의 동상은 일본군 위안부 소녀들을 상징하는 동상입니다.

 

이상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일본이 경제 대국일는지는 모르지만, 민주적으로는 우리나라보다 덜 발전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학자들도 한국의 민주주의 노력을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일본이 저런 천황 중심 사상 때문에 아직도 역사적 사실들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본에 역사적 문제 제기를 계속하여 다시는 못 그렇게 본대를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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