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앙 삼균주의 에 대해 알아봅시다

조소앙 삼균주의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조소앙 삼균주의는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3가지를 균등하게 하겠다는 사상입니다. 정치적 균등, 경제적 균등, 교육적 균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조소앙 삼균주의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에도 녹여져 있습니다.

 

 

위의 사진이 대한민국 건국강령입니다.

대한민국 건국강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꾼 대한민국의 설계도입니다. 그것에 조소앙 삼균주의 사상이 녹아 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1장 중

“우리나라의 건국 정신은 삼균제도에 역사적 근거를 두었으니”

 

조소앙 삼균주의의 구체적 내용은 아래입니다.

O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 정한 선거권이 있는 사람은 만18세 남성과 만19세 여성이다. (1941년)

O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 정한 무상 교육의 범위는 초등교육, 중등교육, 고등교육, 대학교육, 무상급식, 무상교복 전부입니다.

O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 국가 소유로 정한 것은 전국의 토지와 대생산기관, 교회와 사찰, 수상 공중의 운수사업, 부역자의 일체 소유 자본, 영화극장입니다.

 

 

위의 사진이 조소앙 선생 모습입니다.

1940년대에 저렇게 주장했던 것입니다. 지금도 선거권을 만18세로 내린 지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재 OECD 국가 중 평균 선거권을 갖는 나이가 만18세라고 합니다. 그런 것을 1940년대 일제 치하의 시절에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사회적 권리를 주길 원하셨는데요. 조소앙 삼균주의에 보면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생물학적인 것인데 그것 때문에 사회적 권리에 차별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주길 원하셨습니다. 이것 때문에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치신 여성분들도 계십니다.

 

교육에서도 전부 무상으로 교육으로 하는 걸 주장하셨습니다.

 

조소앙 선생은 역사도 세밀한 것까지 아셨는데요. 국가 소유로 땅을 모두 가지고 있을 때 한민족이 잘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조금씩 땅을 개인소유로 바꾸면서 나라가 기울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국가 소유로 대부분 기관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런 것은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소앙 선생은 한학을 기반으로 해서 신학문을 습득하신 분입니다. 15살(1902년)에 성균관에 입학하시고요. 1904년 대한제국에서 앞으로 나라를 짊어지고 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황실 유학생을 선발해 일본에 50명을 유학 보냈는데요. 그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그 황실 유학생에는 최남선도 포함되었습니다. 1912년 25세에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십니다. 대학교를 졸업하시고 한반도에 오셨는데요. 그때는 이미 대한제국이 일본에 넘어간 상황이라 1913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러 가십니다. 거기서 돈이 없으니까 이광수, 홍명희, 정인보와 같이 한방을 같이 썼다고 합니다.

 

 

조소앙 선생은 학교에서 가르쳐주는 것만 배운 게 아니라 평소에 온갖 책들을 많이 읽으셨다고 합니다.

 

 

위의 빨간색 원이 일본 유학 시절 조소앙 선생이십니다.

 

조소앙 선생은 일본 유학 시절 공부만 하신 게 아니라 일본인들이 한국을 공개적으로 멸시하면 그거에 대응하여 동맹휴학을 하는 등 행동도 많이 하셨습니다.

 

아래는 대한민국의 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지은 이유를 적은 글입니다. 조소앙 선생이 처음 주장한 내용은 아니나 아랫글은 조소앙 선생이 적으셨습니다.

“융희(순종) 황제가 삼보(국민, 주권, 영토)를 포기한 8월 29일(1910년)은 즉 우리 동지가 삼보를 계승한 8월 29일이니 우리 동지는 완전한 상속자니 황제권이 소멸한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한 때다” 대동단결선언 1917년

 

대한제국에서 망했으니 다시 세울 나라의 이름도 대한으로 하는 게 맞다고 하셨습니다. 근데 황제국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나라이니 제국이 아니라 민국으로 하는 게 맞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대한민국이 된 것입니다.

 

조소앙 선생은 대한민국 수립의 기초 작업자시고, 독립을 이끌어낸 장본인이십니다. 카이로 회담(1943년 11월 22일~26일)에서 그 많은 식민지중(전 세계의 80%가 식민지) 열강들이 한국을 콕 집어서 독립을 시켜주자고 얘기가 나왔는데요. 카이로 회담 4달 전에 조소앙 선생이 중국의 장제스를 만나 한국 독립시켜달라고 주장하라며 약속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조선 독립에 큰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떨리는 문장인 우리나라 제헌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입니다. 이것도 조소앙 선생이 처음으로 적은 것입니다.

 

일제식민지 시절 좌우 독립운동 단체들 모두 조소앙 삼균주의를 받아들여 기본 사상으로 삼았습니다.

 

조소앙 선생은 해방 후 1950년에 국회의원이 되는데요 바로 6.25가 터지고 납북되십니다.

 

이상 조소앙 삼균주의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저렇게 대단한 분을 이제야 알다니 안타깝습니다. 한국사에서 비중을 더 높여서 다뤄주시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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