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 김춘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는데 주역인 김유신 김춘추

관련 이야기를 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김유신은 신라 최고의 장수인데요. 살아서는

최고의 귀족이 되고 죽은 후에 왕으로 되는

흔치 않은 인물입니다.

김춘추는 후에 무열왕이 되는데요. 당나라와 손을

잡고 삼국을 통일한 왕이 무열왕입니다.

 


위의 사진은 김유신 동상과 축국 그림입니다.

김유신은 화랑시절 기생인 천관녀를

좋아했는데요.

퇴근길에 말 타고 천관녀집을 자주 가

말이 퇴근 자동코스로 인지할 정도로

드나들었습니다.

이런 것을 안 김유신 어머니가 천관녀를

반대하고 김유신도 다시는 천관녀 집에 드니드지

않기로 하는데요.

어느 날 김유신이 퇴근길에 술을 많이 먹어 말위에

서 잤는데 말이 자동으로 천관녀 집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김유신은 그 자리에서 말목을 바로 잘랐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김유신이 화랑시절 혼테크를 합니다.

왕족인 김춘추를 불러 함께 축국시합을 하다

김춘추의 웃거름을 일부러 밟아 떨어트립니다.

이를 핑계 삼아 김춘추를 자기 집으로 오게 하여

여동생 문희에게 웃거름을 고치게 해 김춘추와

여동생 문희의 인연을 만듭니다.

 

김유신은 신라의 진골이긴 하나 정식 신라

출신이 아니라 금관가야 왕족출신으로 편입된

진골입니다.

그래서 진골들 사이에서도 편입된 진골이라는

약간 하대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왕족출신인 김춘추 같은 사람과의 인연이

필요 했습니다.

 


위는 김유신 장군의 태실과 선덕여왕 영정

초상화입니다.

김유신 장군의 아버진 김서현과 진흥왕의 조카인

만명부인이 자유연애를 하여 낳은 자식이

김유신입니다.

둘이 충청북도 진천까지 도망가서 김유신장군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충청북도 진천에 가면 김유신 장군 태실

이 지금도 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김유신이 여동생 문희를 불태워

죽이려고 집에서 불을 피우는데요.

이유는 문희가 결혼 전에 임신을 해서입니다.

그것을 안 덕만 공주(선덕여왕)가 와서 말리지만

김유신은 안 듣고요 보다 못한 김춘추가 불길 속을

달려 들어가 여동생 문희를 구출해옵니다.

그리고 자기가 임신 시켰다고 실토합니다.

 


위의 그림은 왼쪽부터 김유신과 김춘추 진덕여왕입니다.

이일이 있은 후 김춘추는 김유신의 동생 문희와

결혼을 하게 되고요 그 일로 인해 덕만 공주가

김유신의 조력자가 됩니다.

김춘추(무열왕)는 덕만 공주의 조카입니다.

 

김춘추가 김유신 동생 문희와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 이유는

1. 강력한 왕 후보인 덕만 공주와 호의적 관계

2. 김무력(김유신 할아버지)장군의 활약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군사력

3. 화랑의 우두머리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김유신

입니다.

 

신라의 대양성을 지키는 분은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었는데요 문란하게 운영을 하여 백제에게

점령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정치적으로 안 좋게 된 김춘추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관련되어 고구려와 동맹을 맺기 위해 김춘추가

떠납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김춘추가 고구려에

잡힐 수도 있어 김유신에게 뒤를 봐달라고 김춘추가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물어 피를 먹는

행동을 하며 김유신이 김춘추 뒤를 봐줄 것을

약속합니다.

실제로 김춘추는 고구려에 잡히는데요.

뇌물을 받쳐 도망갈 수 있게 되고 김유신장군도

국경지역에서 병사 3천을 거느리고 대기타고 있

는 것이 알려져 김춘추는 무사히 신라로

돌아올 수 있게 됩니다.

 

후에 김유신(48)은 백제 고구려와의 여러 전쟁에서

계속 승전을 하는 전과를 이룹니다.

 

647년 신라 수도 서라벌에서 반란이 일어납니다.

상대등(국회의 장급) 비담과 염종(대아찬)이 선덕여왕후에

다시 진덕여왕이라는 여자가 왕이 될 각이 나오자 이를

반대하며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여주불능선리 여자 임금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10일 동안 치열한 전쟁이 있었는데요.

김유신 김춘추는 선덕여왕편이었습니다.

선덕여왕편은 월성(신라왕궁)에 있었고 비담의

반란군은 명활산성에 있었는데요. 10리정도되는

가까운 거리였답니다.

 

당시 별동별이 김유신 장군 쪽으로 떨어져서

반란군이 이길 것이라는 생각들이 지배했는데요.

이를 안 김유신 장군은 연에 불을 지핀 허수아비를 달아

하늘에 띄어 떨어졌던 별동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포퍼먼스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임금은 높고 신하는 낮다라는 발언을 합니다.

 

그 후 몰아쳐서 김유신 김춘추가 반란군을 진압하게

됩니다.

 

진덕여왕이 승하하고 신라의 29대 왕으로 무열왕(김춘추)

이 즉위합니다. 김춘추는 김유신의 도움으로 신라최초로

진골출신 왕이 됩니다.

 

660년 무열왕(김춘추) 7년에 김유신은 상대등(최고관직)

됩니다.

김춘추와 김유신 여동생 문희의 딸인 지소가

김유신과 결혼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김유신 사후 160년이 지난 후 흥무대왕으로 추존하여

왕으로 지위를 가지고 무덤도 장군 묘에서 왕릉으로

바뀌게 됩니다.

 

이상 김유신 김춘추 관련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김춘추는 당을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했고

김유신은 당을 쫒아냈다고 하는데요.

외세를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한 것이 아쉽네요.

 

신라 파이팅!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