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 삼천궁녀에 대해 알아봅시다

의자왕 삼천궁녀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백제 하면 아무래도 의자왕 생각이 많이 나실 것이고

의자왕 하면 아무래도 삼천궁녀나 낙화암 생각이

많이 나실 것입니다.

의자왕 삼천궁녀는 과연 진짜 역사속 진실인지

알아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의자왕 그림과 낙화암 사진입니다.

삼천궁녀 이야기는 삼국사기 기록에는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삼국유사에 일부 기록이 있는데요.

숫자는 언급하지 않고

여러 후궁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이곳(낙화암)에 와서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다고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삼천이라는 숫자는 조선시기에 와서 문인들의

문집에 나오는데요.

그것도 삼천이라고 확실히 말하기 보다는

망국의 비애를 담은 문학적 상징으로만 언급합니다.

실제로 낙화암에 가보면 삼천이 아니라 삼백 명이

줄 서 있기도 어려운 곳이라고 합니다.

 

의자왕의 아버지는 무왕(서동)이고 어머니는

선화공주인지 익산 귀족의 딸인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의자왕의 성격은 호방하고 결단력이 있다고

하고 37세에 태자로 책봉되었다고 합니다.

저렇게 늦게 태자로 책봉됐다는 것은 무언가

순탄치 않고 문제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의자왕은 왕위에 오르고 초기에는 신라를 계속

공격하며 영토를 넓히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술에 빠지고 충신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등 방탕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럼으로써 당과 신라의 연합군에 굴복하여

당에 끌려가 죽게 됩니다.

 

이상 의자왕 삼천궁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좀 못해도 주변 상황이 안 좋을

때 그러면 한방에 훅갈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백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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