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부의 난에 대해 알아봅시다

정중부의 난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무신정변시 처음에 권력을 잡은 사람은 이의방입니다. 그러나 이의방은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만 몰입하고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원성이 쌓여 정중부의 아들 정균이 이의방을 제거합니다. 그래서 이의방 제거 후 권력을 잡은 사람이 정중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중부 역시 권력을 통해 사리사욕 채우기 바빴습니다.

 


위의 그림은 무신정변 권력 잡은 순서()와 정중부 그림(아래)입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정중부 정중부는 성질이 본래 탐욕스러워 끊임없이 재물을 탐했다.” 그냥 백성들의 재물을 탐했던 것뿐만 아니라 같은 정3품 관료의 땅마저 빼앗으려고 할 정도로 탐욕이 많았다고 합니다.

 


70세가 넘어도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처음엔 그냥 권력을 탐하느냐 권력 자리에 계속 있었는데 나중에는 권력 자리에서 내려오면 죽임을 당할 것 같아 권력을 계속 탐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70세가 넘으면 관직에서 물러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왕으로부터 궤장을 하사 받으면 70세가 넘어서도 관직에 계속 있었다고 합니다. 궤장을 하사 받았던 위인은 김유신, 강감찬, 황희정승이 있습니다. 정중부는 넘버 1의 권력자라 왕의 옆구리를 찔러 강제로 궤장을 하사 받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궤장이란 것의 사진()과 방(아래)의 모습입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정중부 국사는 모조리 그의 손에 의해 처결되었고 때로 중방에 앉아서 형벌의 판결을 내렸으며 백관들은 그의 집을 찾아가 하례를 올렸다.” 명실 공히 고려 넘버 1위인 정중부 이었습니다.

 

정중부가 권력을 자기마음대로 휘두르자 고려의 각 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익명이 방이 붙었다고 합니다. “시중 정중부와 그의 아들 승선 정균과 사위인 보야 송유인이 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르며 방자한데 남적(망이 망소이의 난)이 일어난 것은 그 근원이 여기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만약 군사를 내어 토벌하려면 반드시 이들을 제거한 연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다른데도 아닌 군내에서도 군부 출신 정중부가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위 내용의 방은 정중부 은퇴 소식이 들리자마자 붙여졌는데요. 그래서 정중부는 잘못하면 죽을 것 같아 권력을 내려놓지 못하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정중부 정균이 이 말을(위의 방) 듣고 겁이 난 나머지 해직을 상신하고 여러 날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

 

정중부가 안하무인으로 권력을 마구 휘두를 때 드디어 사건이 일어납니다. 명종 99월 정중부이 아들 정균이 청년 장군 경대승 에게 죽임을 당하고 궁내 정균 세력을 경대승과 그의 결사대가 모조리 제거합니다. 그리고 경대승은 명종을 찾아가 정중부를 체포하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하고 명종은 명령을 내려 도망갔던 정중부를 체포해 죽입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경대승 경대승은 왕에게 금군을 출동시켜 정중부와 송유인 부자를 체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 정중부의 난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정중부의 난에서 배울 수 있는 사항은 아무리 권력자가 되어도 사람들 눈치 안보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면 화를 면하기 어렵다는 정도 인듯합니다. 박근혜도 그렇게 대통령에서 죄수가 되었지요. 권력자는 민심을 무서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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