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업적 금난전권 폐지정책 신해통공

정조의 업적 금난전권 폐지정책 신해통공

관련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정조 역시 세종대왕 같은 대왕으로 불릴

만한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일찍 죽어 업적은 세종대왕에 못 미치더라도

백성들을 생각하는 개혁의지와 정치력은

정말 대단하신 분인 듯합니다.

참고한 영상은 역사저널 그날 74

입니다.

 

 

먼저 시전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전은 조선 정부로부터 특정상품을 판매할 권한

을 받은 상설 상점을 말합니다.



그리고 난전은 시전이 아닌 이외의 상점들을

말합니다. 조선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은 상점들이지요.

 

 

여기서 알아둘게 난전은 대부분 전형적인

생계형 상인들입니다. 잉여농산물이나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된 상품을 입에 풀칠이나

하려고 조금 파시던 분들이었습니다.

 

 

시전 상인들은 금난전권이라고 난전을 금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습니다.

생계형으로 상품을 조금이라도 파시려는 분

들을 막을 수 있는 권리지요

극소수의 시전상인들이 상업을 독점하여

물가가 상승하고 내부분의 난전상인들의

생활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이 당시 상업의 흐름도입니다.

지방 소상인의 물품은 직접 팔 수 없고요

반드시 시전상인에게만 팔 수 있습니다.

헐값에 팔리겠죠?

그리고 그 물품들은 시전상인이 허락한

행상들만 나눠서 팔릴 수 있습니다.

비싸게 팔리겠죠?

위의 흐름으로 상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위의 사진은 육의전이라고 시전중 제일 큰

6개의 시전이 거래하던 물품인데요.

비단, 명주, 무명, 모시, 종이, 어물(or )

입니다.

물품중 어물을 제외 하고 나머지

물품들은 화폐로도 쓰일 수 있는 물건들입

니다. 가장 필수품들이 지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전 상인들은 독점권을 얻는 대신 나라에

세금을 내게 됩니다.

국가 입장에선 중요한 세금원이죠

금난전권이 처음에는 위의 6개 상인에게

만 부여를 했는데요. 그것이 14개로 늘었다가

나중에는 100개 이상으로 늘게 됩니다.

판매금지 물품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왜 저런 정책이 나왔냐 하면요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선비, 농민, 공인, 상인

순으로 귀천을 나누던 당시 사회상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선비나 농업을 중시하고

상인을 천시하던 상황에서 나온 제도라고

합니다.

 

 

18세기 조선은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필요한 물품들이 당연히 증가하게 되는데요.

거기에 맞춰 상업이 확대되게 됩니다.

그에 따라 국가에서 상업을 조절하려고

만든 제도가 시전제도입니다.

시역이란 것이 시전들이 내는 특별

세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전상인들의 독점권이외의 권한들은

어떤 것이 있냐면 요

1. 금난전권

2. 관수품 납품

3. 국고의 잉여물 처분 우선권 부여

가 있습니다.

이외에 방납(공물을 대신 바치고 그 대가

를 곱절로 불려 가로채던 일)을 하고

사무역도 하는 등 돈을 긁어모았습니다.

 

 

당시 왕에게 민원을 제기 할 수 있는 방식

이 몇 가지 있었는데요. 격쟁(왕이 지나갈 때

징 같은 것을 쳐 하소연하는 제도), 상언

(왕이 지나갈 때 청원한 글을 드리는 제도)

신문고(북을 쳐서 민원을 제기하는 제도 실질

적으로 성 문 2개를 통과해야 해서 하기 정

말 힘듦)이 었습니다. 격쟁 같은 경우 접수

된지 3일안에 처리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민원들이 계속 적으로 올라옴으로써

정조도 시전제도의 문제를 인지하게 됩니다.

 

 

위의 그림이 왕이 행차 할 때 상언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요.

왕이 행차시 저렇게 접수하는 관리한테 민원

내용 쓴 종이를 줬다고 합니다.

격쟁은 대부분 글 모르시는 분들이 했는데요.

징을 치고 있을 때 접수받는 분이 와서 얘기를 하면

접수받는 분이 그 내용을 글로 적었다고 합니다.

 

 

 

 

맨 위의 사진은 정조가 1년간 평균 바깥 행차

를 한 횟수고요

그 다음 사진은 상언과 격쟁을 한 주체가 어떤

신분인지 말해주는 표입니다. 천민 분들도

많으시네요.

 

 

그러나 당시 시전상인들은 국가의 중요한

세금원이기도 하고

노론세도가들과 군영들에게도 뇌물을 바치는 등

권력자들을 등에 업고 있어

함부로 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난전인분들이 시전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나라에서도 세수확보 때문에 시전상인

들이 많아지는 것을 반기게 됩니다.

 

 

당시 남인 출신의 정승 채제공이란 분이

시전관련 건의를 하게 되는데요 정조가

이를 들어주게 됩니다.

건의 내용은

1. 만들어진 지 수십 년이 안 된 작은 시전은 혁파

2. 육의전 이외의 시전은 금난전권 행사 불가

3. 지나치게 소상인을 고발하는 등 형사권 남용 금지

입니다.

당시 이에 대해 엄청난 반발이 있었는데요.

채제공이 정조의 방패막이가 되어

개혁을 추진하게 됩니다.

 

조정에서 금난전권의 폐단이 공론화 되고

1791년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게 됩

니다. 시전상인들의 권력을 몰수 하고

모든 상인들이 자유롭게 상거래를 할 수

있게 합니다. 신해통공이라고 하는데요.

이를 한문과 한글로도 방을

만들어 곳곳에 다 붙였다고 합니다.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