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후장군 에 대해 알아봅시다

김윤후장군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김윤후장군 은 몽골침략때 2번이나 몽골을 격퇴하여 몽골군을 물러나게 한 주인공이십니다. 고려시대 때 몽골군 6차례에 걸쳐 고려를 침공하는데요. 김윤후장군 님이 활약해서 몽골군이 돌아가게 한 침입은 2차 침입(1232)5차 침입(1253)입니다

 


위의 표시된 지역은 처인성 위치입니다.

아래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조헌의 의병모집 격문입니다.

김윤후는 화살 하나로 돼지(사르탁 몽골 장군)를 맞혀 죽여 황성에서 몽병을 물리쳤으니, 이들은 모두 유나 승이었고, 무를 숭상하는 자나 뛰어난 장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중봉집

 


위에서 보시는 격문에 보듯이 김윤후장군 님은 의병들의 정신적 지주 같은 분입니다. 김윤후장군 님은 원래 승려였는데요 몽골의 2차침입당시 처인성 전투에서 화살로 몽골 최고우두머리인 사르탁 장군을 죽여서 몽골군이 몽골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몽골군은 최고 장군이 죽으면 군대를 철수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처인성은 현대 경기도 용인지역(경기도 용인시 남사면 아곡리)입니다. 처인성에는 부곡 민들(양인 중 계급이 제일 낮은 그룹, 고려시대는 지역별로 비슷한 계급사람들끼리 삶)이 살았는데요. 그들과 함께 싸워 세계 최고 군대 몽골군을 물리친 것입니다.

 

처인성 사람들은 그 후 지역이 주현으로 바뀌어 지역 주민들 신분이 2단계 뛰는 포상을 받았습니다.

 

김윤후장군 은 승려시절 백현원 출신의 승려였던 것만 알려졌고 다른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사르탁 장군은 12321216일 날 전사하고 몽골군은 고려에서 철수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세가 고종 19사르탁이 처인성을 공격하자 성 안에서 피난 와있던 한 승려가 그를 활로 쏘아 죽였다.”

고려사 열전 김윤후 몽골 원수 사르탁이 성을 공격하자 김윤후가 그를 활로 쏘아 죽였다.”

 


위의 그림은 김윤후장군 모습()과 몽골항전을 나타낸 그림(아래)입니다.

그래서 고려 왕실에서 김윤후장군 에게 상으로 정3품 상장군(무신 최고위직)을 주려고 하는데요. 김윤후장군 은 그 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고려사 열전 김윤후 김윤후는 전투할 때 나는 활이나 화살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어찌 함부로 무거운 상을 받겠는가. 하고 끝까지 사양하였다.”

 

김윤후장군 은 자신이 활을 안쏜것이라고 한건데요 기록상 내용이 다른 사항입니다.

 

원사 고려전 사르탁이 고려를 정토하던 중 처인성에서 유시(그냥 막날라오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역사는 모르겠는 사항은 모르겠다는 내용으로 알고 기록하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위에서처럼 김윤후장군 이 사르탁을 죽였다는 기록도 있고 그게 아니라는 기록도 있다고 알면 된다고 합니다.

 


위에 표시된 지역은 충주성이 있던 충주의 위치입니다.

21년 후 몽골은 고려를 5차 침입을 합니다. 그래서 충주까지 도달하는데요. 당시 충주성의 지휘관이 김윤후장군 이셨습니다.

충주성 사람들은 70여 일 동안 열심히 싸웠지만 점차 식량이 고갈되자 동요하게 되는데요. 그러자 김윤후장군 은 관노비 문서들을 노비들이(당시 백성의 50%정도) 보는 앞에서 태우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고려사 열전 김윤후 김윤후가 군사들에게 만약 힘을 다해 싸워 준다면 귀천을 불문하고 모두 관직을 줄 것이니 너희들은 나를 믿으라.” 이런 말과 행동을 본 노비와 백성들은 전력으로 싸워 몽골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김윤후 김유후가 백성들을 설득한 뒤 관노 문서를 가져다 불살라 버리고 노획한 말과 소를 나누어 주었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무릅쓰고 적에게 돌진하니 몽골군은 조금씩 기세가 꺾여 더 이상 남쪽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위의 기록처럼 당시 고려는 충주성에서 승리하고 다인철소에서도 연속 승리하여 몽골군은 남진하지 못하고 5차침입에서 물러가게 됩니다. 김윤후장군이 노비 백성들에게 한 약속은 지켜 줬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김윤후

“(충주성 전투)공이 있는 사람은 관노 백정에 이르기까지 모두 관직과 작위를 차등 있게 내려주었다.”

 

당시 김윤후장군 은 정 6품 낭장이었는데요 감문위섭장군 -> 동북면 병마사 -> 추밀원부사 -> 수사공우복야(2품 현재 장관급) 까지 벼슬을 하시고 더 이상 기록은 없습니다.

 

이상 김윤후장군 에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를 살펴보았습니다.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려고 목숨을 바치신 분들은 일반 백성이나 서민들이 많으십니다. 오늘날까지 한민족의 자체적인 국가가 유지될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해주신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 블로그 카카오 스토리 채널 구독 하기~

 블로그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하고 구독 하~

 블로그 밴드 구독 하기~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