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거북선 에 대해 알아봅시다

임진왜란 거북선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장군 중에 한분은 이순신 장군님인데요. 이순신 장군님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거북선 이 있습니다. 정주영 고 현대회장은 조선소 설치하느냐 외국에서 투자 유치할 때 우리는 조선시대에 이미 임진왜란 거북선을 만들 정도의 조선기술이 있다고 설득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임진왜란 거북선 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위의 그림은 임진왜란 거북선 모습()과 판옥선 모습(아래)입니다.

조선 수군의 주력함은 판옥선입니다. 판옥선도 좋은 군함인데요. 판옥선에 덮개를 씌우고 검과 송곳을 덮개에 붙인 것이 임진왜란 거북선입니다. 조선시대 당시 수전은 배끼리 부딪힌 후 육지전투처럼 서로의 배에 올라타 백병전을 하는 방식이었는데요 임진왜란 거북선 은 덮개와 검을 장착에 적이 임진왜란 거북선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게 만든 이유는 적이 올라타지 못하니까 적 진영에 제일 처음으로 쳐들어가 적 진영을 교란시키기 위한 돌격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임진왜란 거북선을 만들고 처음 훈련을 마친 후 다음날 임진왜란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엄청난 타이밍입니다.

 

거북선을 역사 기록에는 귀선(龜船)이라고 적는데요. 이 귀선이란 단어는 임진왜란 180년 전 태종 13(1413)년에 나옵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입니다. 태종 141325임금이 임진나루를 지나다가 귀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상황을 구경하였다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습니다. 태종실록 1415716(좌대언 탁산이 올린 군사 대비책) “거북선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들이 쉽사리 피해를 주지 못하니 반드시 이기는 좋은 계책이라 함이 옳을 것입니다

 

이는 고려 말 이후 왜구들의 침략이 많다보니까 왜구들에 대항하기 위해 이것저것 실험하는 과정에서 임진왜란 거북선 이 나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렇게 기록이 있은 후 한참동안 임진왜란 거북선 기록이 없다가 임진왜란 때 다시 임진왜란 거북선 기록이 나온 것입니다. 아마 저때 실험하고 폐기됐다가 나중에 이순신 장군님이 다시 복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의 숫자는 3척에서 5척정도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2척이었다가 나중에 더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처음엔 수전에서 임진왜란 거북선 이 맹활약을 하는데요. 나중에 이순신 장군님이 선조한때 고문당할 때 1597715일 칠천량 전투에서 원균이 임진왜란 거북선을 포함한 수군들 지휘하다 대패하여 임진왜란 거북선 은 모두 침몰됩니다.

 

임진왜란 거북선 의 첫 함장은 급제 이기남님이라고 기록에 있는데요. 직위의 정식 이름은 거북선 돌격장입니다. 이기남님에 대한 기록은 거북선 돌격장이었다는 것밖에 없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고요 급제라는 단어를 붙인 것으로 보아 무과시험에는 합격했으나 아직 벼슬직위를 받지 않았거나 백의종군을 하던 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임진왜란시 수전을 표현한 그림()과 학익진 모습(아래)입니다. 학익진 시 임진왜란 거북선의 위치는 양 맨 끝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거북선 에는 활 쏘는 사수, 포 쏘는 포수, 노 젓는 격군 등의 분들이 타셨는데요. 격군 중에는 노비인 분들도 많이 계셨지만 이순신 장군님은 그런 분들의 이름까지 다 기록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거북선 은 돌격선이라 적 진영을 잘 휘저어야 돼서 노젓는 격군 분들이 중요하기도 했습니다.

 

임진왜란 거북선 의 단점은 1. 좁은 시야 2. 화포 발사 후 환기 문제 3. 내부 조명 문제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거북선 의 공은 서해를 지킴으로써 일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일본군이 우리나라 서쪽이나 북쪽으로는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류성용 징비록 이순신이 한 번의 싸움(한산도 대첩)으로 드디어 적군의 한쪽 세력을 꺾었기 때문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비록 평양을 점령했으나 형세가 외로워져서 감히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전라도 충청도 황해도 평안도 연해 지역 일대를 보전함으로써 군량을 보급시키고 조정의 호령이 전달되도록 하여 나라의 중흥을 이룰 수 있었으며…….”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 후기에도 거북선이 있었습니다. 영조 대에는 40, 순조 대에는 18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그 때의 거북선은 전쟁용이라기보다는 해상훈련용이나 열병식 같은 행사에 사용되는 용도였습니다. 그래서 좀 화려해지고 크기도 커졌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거북선 은 덮개 검들이 붙은 부분에 물이 젖은 헝겊으로 뒤덮었다고 합니다. 헝겊을 뒤덮은 이유는 위장을 하기 위해서와 적의 화공을 방어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상 임진왜란 거북선 에 관련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 거북선 의 실물을 발굴했으면 좋겠네요. 과학이 더 발전하여 지금보다 더 깊숙한 바다까지 탐사가 가능해지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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