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세도세자 의 아들이다

정조 세도세자 의 아들이라는 내용의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정조는 영조와 함께 세트로 거론되시는 분인데요 세종대왕시대와 함께 조선 최전성기를 만든 영정조 시대 왕입니다. 영조는 정조 할아버지이고요 사도세자는 영조의 아들입니다. 그러니 영조 밑으로 손자인 정조, 아들인 사도세자가 있는 것입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한말이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위의 도표가 정조 사도세자 가계도와 사도세자가 갖혀 죽은 뒤주의 모습입니다.

정조 는 사도세자 의 아들이지만 사도세자가 정치 분쟁에 휘말려 뒤주에 갇혀 굶어 죽게 됩니다. 영조가 그렇게 명령 한 것인데요. 그 후 정조는 사도세자의 배다른 형인 효장세자의 양아들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후에 영조의 대를 이어 정조는 왕이 되고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잊지 못하여 왕위에 오르자마자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정조 아버지인 사도세자는 아버지인 영조가 죽일 만큼 부자지간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영조가 42살 정도에 사도세자를 낳았는데요. 처음엔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지간 사이가 좋았지만 나중에는 사도세자가 너무 폭력적이 되고 정쟁에 휘말리는 등 엄청나게 사이가 틀어져 사도세자는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굶어 죽게 됩니다. 정조는 영조와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

 

정조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죽을 당시 정조 나이는 11살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일은 기억하고 있었답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고 무조건 적으로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신하들한테 다 복수 하지는 않고요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핵심인물들과 자신이 왕이 되는데 반대 했던 핵심인물들만 죽이고 나머지 애매한 사람들은 다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탕평책의 일환입니다. 탕평책은 정치 세력들 간의 균형을 꾀하는 정책입니다.

 

정조 사도세자 가 뒤주에 갇혀 굶어죽은 사건에 얽힌 권력자들이나 정조와 다른 생각인 권력자들은 정조를 죽이기 위해 자객을 몇 번 보내는데요. 다행이 정조는 어렸을 때부터 무예도 익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활을 활잘쏘는 무인보다 배는 더 잘 쐈다고 합니다.

 

죽음의 공포에 항상 휩싸여 있는 정조인데요. 그것을 이겨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밤늦게 까지 자주 독서를 하고 무예도 계속 연마하셨다고 합니다.

 


위의 그림은 정조 사도세자 초상화입니다. 위가 정조 아래가 사도세자입니다.

정조 초상화는 현대에 상상해서 그린 것으로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정조 사도세자 사건이 얽혀 정조는 복수의 피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최소로만 응징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포용하며 탕평책으로 정치의 균형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이상 정조 사도세자 관련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정조는 아버지를 읽은 한이 엄청 날 텐데요 자제 하는 모습 참 대단해 보입니다. 정조 사도세자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일궈주신 정조 대왕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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