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괄의 난 에 대해 알아봅시다

이괄의 난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이괄의 난 주인공인 이괄에 대해 먼저 안내하겠습니다. 이괄은 1587년 ~ 1624년입니다. 고조부인 이륙은 대사헌이라는 높은 직위까지 하고요 조부 이택은 참판, 부친 이제는 현감 등을 두르지 낸 무인 집안이나 문무를 겸비한 집안 출신입니다. 이괄의 성격은 어린나이에 범람한 짓을 저지를 때가 있다고 합니다. 이괄의 주요관직은 선전관, 명천 현감, 평조 좌랑, 태안 군수, 경성 판관, 제주 목사, 북병사, 한성부 판윤, 부원수 겸 평안 판사 등 지방을 평안도부터 제주도까지 돌아다녔고, 중앙에서도 관직생활을 하였습니다.

이괄의 난을 당시에 이괄의 변이라고도 했는데요. 난이란 구체적인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일으킨 반란이고, 변은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뜻합니다. 이괄의 변이라고 당시 불렸던 이유는 이렇게 이괄의 난 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란 것을 당시도 이해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후 인조가 왕이 됩니다. 인조반정에는 이괄도 합류해서 같이 움직였는데요. 이괄은 당시 무인 대장이 늦게 올 때는 임시로 인조반정 세력 무인 대장을 할 정도로 핵심 멤버였는데요. 인조반정이 성공한 후 이괄은 인조반정 공신에서 2등 공신으로 책정되는등 인조반정 세력 내의 권력싸움에서 밀리는 형국이었습니다.(이괄의 난 이 일어난 계기 중 하나)

 

인조는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만큼 사찰을 많이 하는 정치를 하였습니다. 당시 말로는 기찰 정치라고 하는데요.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이 멤버들 사찰을 많이 했습니다. 단순히 사찰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모를 꿰하는 말도 프락치가 하는 등 함정 수사도 많이 했습니다. 이런 기찰 정치의 중심에 이괄이 있었는데요. 중앙에서 이괄이 있다가 함경도 국경 수비대로 떠나게 됩니다.(이괄의 난 이 일어난 계기 둘)

 

당시 북쪽의 만주쪽은 여진족이 강성해 후금을 만들고 후금과 명나라가 치고받고 할 때였습니다. 근데 조선은 명나라하고 친해 후금이 언제든지 평안도 쪽으로 치고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래서 평안도에 12,000여명의 정예병이 있었고, 이괄이 이를 총지휘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중앙에서 이괄의 역모가 의심된다고 해서 이괄을 기찰 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인조가 아니라며 말리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래서 인조와 신하들간에 이괄 대신 이괄 아들일 기찰 하자고 합의를 봤습니다.(이괄의 난 이 일어난 계기 셋)

 

그래서 중앙에서 이괄 아들을 데려가려고 이괄한테 오고 있었는데요. 이괄이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괄은 당시 아들이 1명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이유등으로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라 생각하고 12,000여 명의 병력으로 거병을 하여 이괄의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괄의 난 시작은 중앙에서 이괄 아들을 데리러 온 신하가 이괄한테 도착했을 때 그들의 목을 따는 것으로 시작을 하였습니다. 중앙 신하들 목을 따고 이괄은 12,000여 명의 병력을 한양으로 진격하여 20여 일 만에 도착해 한양을 점령하였습니다. 이래서 평안도 국경은 뻥 뚫렸고요.

 

인조는 공주로 피난을 갔습니다.

 

인조가 피난 생활을 할 때 백성들이 먹으라고 떡을 줬는데요. 인조가 굉장히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떡 이름이 뭐냐고 백성한테 물어보니까 떡 이름은 모르고 임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임+절미(絶味)로 불리다가 나중에 인절미로 바뀌어서 부르게 된 떡 이름입니다.

 

인조는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피난을 가고 있었고요.

 

1624년 2월 11일 서울 안현(현재의 연대 뒷산)에서 이괄 군대와 정춘신의 관군이 싸움을 합니다. 관군은 미리 안현에 진을 치고 높은데 올라가 이괄 군대를 기다린 후 높은곳에서 싸우는 전술로 이괄 부대를 이깁니다.

 

이괄의 난 을 일으킨 이괄은 전투에서 진후 경기도 광주 쪽으로 도망가는데요. 안현 전투에서 이긴후 인조는 이괄 목에 포상금을 겁니다. 그래서 경기도 광주쪽에서 이괄 부하가 이괄 목을 따고 공주로 가서 인조에게 목을 바치며 투항을 했습니다.

 

이상 이괄의 난 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이괄도 안타까운 측면이 있습니다. 누명을 쓰고 어쩔수 없이 이괄의 난 을 일으킨 것인데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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