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 에 대해 알아봅시다

장희빈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장희빈 의 본명은 장옥정이지만, 후궁에게 내리는 정 1품 품계인 빈이 되었다고 해서 통상 장희빈 으로 불립니다. 장희빈은 조선 20대 왕 경종의 어머니이자, 숙종의 아내였습니다. 1659년생으로 신분은 중인(역관 집안)이고, 외모는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 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조선 관련 역사서중 여자 얼굴이 이쁘다고 기록한 것은 장희빈이 유일합니다. 그만큼 절세미녀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성격은 간사하고 악독하다고 하는데요. 장희빈 관련 기록은 인현왕후전라는 책에서 참고하는 것이 많은데요.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라이벌이라 인현왕후 반대쪽인 장희빈을 안 좋은 시각으로 쓴 것임은 감안해야 합니다.

장희빈 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다 유명한 역관이었고요. 5촌 당숙인 장현이라는 인물이 남인인데 장희빈 후견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숙종실록 1686년 12월 10일 “역관 장현은 국중 거부다.”라고 되어있는데요. 지금으로 치면 수백억 이상의 자산가 정도 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장현이란 인물은 딸을 효종 때 궁녀로 입궁시키고요. 조카딸인 장희빈 도 궁녀로 입궁시켜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남인인 장현이 자신의 정치적 실력을 키우기 위하여 그렇게 행동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장희빈은 그래서 남인 쪽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반하여 장희빈 의 라이벌인 인현왕후는 1667년생이고, 신분은 양인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최고 명문가 송시열과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자녀가 없고, 외모도 기록에 없고 성격은 온순하고 착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인현왕후전이라는 책에서 참고한 자료이기 때문에 인현왕후를 주인공으로 기록한 책임을 감안하고 이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가 숙종이 맨날 장희빈하고 있으니까 쟤는 매우 간사하고 악독하고, 국가의 화가 될것이라면서 장희빈을 궁에서 쫓겨낸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숙종이 장희빈을 계속 그리워 하니까 명성왕후가 죽은 후 7년 만에 인현왕후가 건의하여 장희빈을 다시 궁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 후 숙종은 장희빈과 많이 같이 있는데요. 숙종과 정부인 인현왕후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장희빈한테서 숙종의 아들이 태어나자 숙종의 마음은 장희빈에게 완전히 기울어졌습니다. 장희빈이 위험하다고 신하들이 상소를 하면 그런 신하들을 고문하거나, 귀향 보내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리고 숙종은 환국 정치를 하는데요. 환국 정치란 집권 세력이 급변하면서 이에 따라 정국이 바뀌는 것입니다. 숙종이 남인과 서인 중에서 장희빈과 연결된 남인에 힘을 실어주고, 서인들을 귀향 보내고, 내쫓고 하니까 국가 정권이 남인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또 단순히 서인세력을 배척한 것뿐만 아니라 서인과 연결된 인현왕후도 폐출을 합니다. 숙종실록 1689년 5월 2일 “인현왕후가 꿈에서 선왕을 만났는데 장희빈은 팔자에 아들도 없고 복도 없으니 궁에 두면 해가 될 것이다”라고 꿈 이야기를 인현왕후가 숙종에게 했는데요. 숙종은 장희빈에게 저주를 한 것이란 것이 공식적인 인현왕후 폐출 이유입니다.

 

인현왕후 폐출은 생일날 공식 통보를 했다고 하는데요. 인현왕후는 그 후 친정집 안국동에서 생활합니다. 인현왕후 폐출 관련 반대를 했던 신하들은 고문을 하는 등 귀향을 보내어 서인세력들이 대거 정권에서 배척을 당합니다.

 

그 후 장희빈의 가족들이 조선 최고의 권력가가 되는데요. 장희빈 아버지는 영의정, 증조할아버지는 좌의정, 할아버지는 우의정을 하는 3대 증직은 조선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인사입니다. 장희빈 오빠인 장희재도 총융청의 장이 되었습니다.

 

장희빈 은 중전이 된 후에 자리에 걸맞지 않게 투기를 부렸습니다. 숙종에게 후궁을 어디에 숨겨놓았냐고 따지는 등 체통에 걸맞지 않게 투기를 부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숙종에게 무수리 최 씨가 눈에 띄는데요. 이를 안 장희빈이 다음 날 무수리 최 씨를 불러 매질을 하였습니다. 그걸 숙종이 발견하는데요. 숙종은 무수리 최씨를 풀어주고 승은을 입혀 후궁으로 앉힙니다.

 

그러면서 숙종의 마음은 장희빈에게서 돌아서기 시작하는데요. 단임 만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숙종은 인현왕후의 폐위를 자못 후회하면서 매번 혼자 있을 때면 문득 길게 한숨을 쉬면서 서쪽의 안국동(인현왕후가 폐출되고 거처하는 친정집)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인현왕후는 기사환국이라고 해서 1689년 폐출이 되고, 갑술환국이라고 해서 1694년 다시 복위가 되어 궁으로 돌아옵니다.

 

위에서 언급한 무수리 최 씨는 후궁이 되고 결국 숙빈 최 씨가 되는데요. 1679년 출생, 1674년 부모 사망, 1676년 7세 궁녀로 입궁, 1693년 종 4품 숙원(숙종과 첫 만남), 1694년 종 2품 숙의(영조 출산), 1695년 종 1품 귀인, 1699년 정 1품 숙빈이 됩니다. 무수리 최 씨가 바로 후에 영조의 생모가 되는 것입니다.

 

숙종은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희빈 생일날 장희빈 처소에 갑니다. 그러다 거기서 저주 물품을 발견하는데요. 실제로 장희빈은 당시 무당 등을 불러 인현왕후를 저주하는 의식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또 인현왕후가 당시 궁에서 진짜로 많이 아프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숙종은 장희빈을 죽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사약을 내려 죽이는데요. 실제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기록에는 장희빈이 자진(=자살)을 당하였다고 하고 죽은 것은 맞지만 그것 관련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후 환국 정치를 하는 숙종은 장희빈 계열인 남인들을 몰아내고 서인들이 다시 정권을 잡습니다.

 

그 후 인현왕후도 병으로 죽고요 무수리 최 씨가 숙빈 최씨가 되어 숙종의 마지막 아내가 되고 영조도 낳습니다.

 

이상 장희빈 관련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김혜수 씨가 드라마 장희빈 으로 열연하셨고요. 최근에는 동이라는 드라마가 숙빈 최 씨의 인생을 각색한 드라마입니다.

 

숙종은 여자 때문에 정권을 마음대로 바꾸는 안 좋은 행동을 했는데요. 이런 점은 남자들이 주의할 점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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