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소개합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를 소개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홀로코스트 는 2차 세계대전중 히틀러가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슬라부족 등 힘없는 사람들을 1천1백만 명이나 대량 학살한 사건을 뜻합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역시 유대인들의 수용소이면서 대량 학살이 일어난 장소인데, 현재 교육용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의 외각에 전기 철조망과 감시탑이 있는 모습(위 사진)과 시체 소각장 사진(아래 사진)입니다.

2020년은 나치 해방 75주년을 맞이한 해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는 유대인들의 강제 노동과, 고문, 생체실험이 일어난 장소입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는 독일 중부 도시 바이마르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나치 독일이 2차세계대전 전인 1937년 설립하였습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의 40헥타르(121,000평) 수용소 외곽은 전기가 흐르는 전기 철조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시탑 23군데에서 수용자의 모든 행동을 감시하였습니다. 전기 철조망으로 가는 수감자가 있으면 경고 사격 없이 즉시 발사를 하였습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입구에는 ‘각자에게 제 몫을’이라는 문구가 붙어있습니다. 저 문구의 의미는 ‘너희는 여기 있는게 마땅하다’라는 의미의 문구입니다. 수감자를 모욕하는 발언인 것입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안으로 들어가면 인체 실험과, 신체 해부를 했던 해부실이 있습니다. 나치는 새로운 독극물이나 해독제를 발명하면 먼저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에서 테스트를 했습니다.

 

2차세계대전 끝나고 수용소가 해방되는 1945년까지 유대인 등 수감자는 총 28만여 명입니다. 이 가운데 5만 6천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사망한 이유는 굶주림과, 강제 노역, 고문, 생체실험등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죽다 보니까 하루에 400여 구의 시체를 소각할 수 있는 소각로도 만들었습니다. 금니는 소각 전에 미리 뽑았습니다.

 

 

1945년 4월 11일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에 도착한 미군부대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수감자들은 대부분 뼈만 남았고, 시체가 너무 많아 시체 썩는 냄새가 온 지역에 진동하였습니다.

 

연합군 사령관은 근처의 바이마르 도시에 사는 독일인들을 데려와서 견학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독일인들도 거기가 대규모 수용소 였고, 시체 소각도 계속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독일 바이마르는 독일이 자랑하는 문학가 괴테와 쉴러가 고전주의 문학을 꽃피운 곳입니다. 또 공화국 최초의 헌법이 공표된 문화도시입니다. 그 바이마르에서 불과 10km 떨어진 곳에서 대량 학살이 계속 일어났던 것입니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는 이젠 기념관으로 바뀌어 과거의 역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투쟁을 선전 했던 동독 시절을 지나 1990년부터 통일 이후에는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장으로 변모하였습니다. 학교와 연계한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이 수시로 운영됩니다.

 

2020년 1월 27일 독일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 지도자들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해방 7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반 유대주의와 맞설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도 홀로코스트 75주년을 맞이하여 생존자를 초청하여 추모행사를 열 계획입니다.

 

잔혹한 역사에서도 교훈을 찾을 수 있는 용기가 한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홀로코스트 기념관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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