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 죽은 이유 에 대해 알아봅시다

사도세자 죽은 이유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사도세자 는 영조의 아들입니다. 영조의 명령으로 뒤주(쌀통)에 갖혀 8일 동안 있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사도세자 죽은 이유로 당쟁 때문이라고 많이 아시는데요. 실제로 당쟁의 요소가 없던 것은 아니였지만, 진짜 큰 이유는 아버지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 의 갈등이 극심해서입니다.

사도세자가 어렸을 땐 영조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실제로 영조 42살에 사도세자를 낳는데요. 늦둥이에 왕을 이을수 있는 아들이 태어나서 영조도 굉장히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사랑도 많이 받았고요. 사도세자는 세자 직위를 돌 지나자마자 받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아버지 영조로부터 사랑을 한껏 받는 유아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도세자는 자라나는데요. 문인보다는 무인기질이 다분한 사도세자였습니다. 조선 군대에서 사용하는 무예를 표준화하는 책을 낼 정도로 무예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도세자 가 영조 35년(1759년)에 낸 무예교본이 그것인데요. 훗날 정조의 무예도보통지 간행에 참고자료가 되었습니다.

 

그에 반해 영조는 치밀하고 꼼꼼하고, 검소한 문인쪽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공부도 중요했고요. 조선은 문무를 겸비한 것을 최고로 쳤는데요. 영조는 문인쪽이지만, 사도세자는 무인 쪽으로 서로 기질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또 10대이후로 사도세자가 공부를 잘 안 했습니다. 그래서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공부하는 게 싫으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답니다. 당시는 솔직하게 말해서 영조가 칭찬해줬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사도세자 10대 지나서부터는 서로 기질이 맞지 않은 부자관계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영조에게는 일종의 편집증이 있었는데요. 불길한 글자는 꺼려 사용안했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게 극도로 분명했습니다. 영조는 화완옹주를 사랑했는데요. 마침 사도세자가 화완옹주가 있는 곳에 있을 때 영조가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세자가 궁 담을 넘어 도망갔다고 합니다.

 

영조는 불길한 말을 들으면 바로 귀를 씻는 습관이 있었는데요. 사도세자와 말을 섞은 후에는 반드시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영조가 사랑했던 화평옹주가 있었는데요. 화평옹주와 사도세자는 어머니가 같습니다.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가 안 좋을 때 화평 옹주가 중간에 끼어서 중재 역할을 잘해줬습니다. 근데 사도세자 14살 때 화평옹주가 돌아가셨습니다.

 

9년 후에는 사도세자의 친어머니는 아니지만 후견인 역할을 했었던 정성왕후(영조의 정비)가 사망하고요. 같은해에 인원왕후도 돌아가십니다. 그래서 영조와 사도세자 중간에서 갈등을 해소해주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 사도세자 죽은 이유와 같이 영조와 사도세자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사도세자는 15살 때부터 13년 5개월동안 영조의 대리청정을 하는데요. 여기서 대리청정은 왕을 잘할 수 있는지 보는 일종의 테스트 기간입니다. 그동안 사도세자는 신하들이 하자는거 하지 못하게 하면 왜 못하게 하냐고 영조한테 욕먹고요. 또 그냥 신하들 하자는대로 하면 그걸 왜 그냥 하느냐고 영조한테 욕먹는 등 뭘 해도 욕먹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실제로 사도세자 말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세자 죽은 이유 중에 큰 몫을 차지하는게 사도세자가 정신병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혜경궁 홍 씨는 사도세자의 아내인데요. 혜경궁 홍씨가 기록한 ‘한중록’에 이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한중록에 의하면 사도세자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경패증, 천둥이나 벼락을 무서워 하는 뇌벽증, 옷을 제대로 입지 못하는 의대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또 사도세자는 발작이 시작되면 시중을 들던 궁녀와 내관을 함부로 구타하고, 죽이는 일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사도세자는 자살을 시도했으며 심지어 우물에 몸을 던지려고 까지 했습니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이런 광증에 대해 궁궐 어른들은 잘 알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 또한 사도세자 죽은 이유 는 광증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실록에도 의관이 기록한 글에 의하면 사도세자가 영조 발걸음만 들어도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영조실록 31년 4월 28일 “동궁(사도세자)이 근래에 가슴이 막히고 증후가 있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이런 증세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또 사도세자의 아들과 딸을 낳아준 빙애라는 후궁이 있었는데요. 이 후궁도 옷시중을 못한다는 이유로 사도세자에게 맞아 죽는일도 일어납니다.

 

이렇게 사도세자가 안좋게 살 때 나병언 고변 사건이 일어납니다. 나병언이 역모가 있다고 조정에 고변을 한 것입니다. 역모 관련 고변은 왕을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나병언이 역모 관련 고변이 있다고 조정에 말한 후 영조를 만난 자리에서 사도세자가 사람을 죽이는 일, 몰래 궁을 빠져나가 논일 등 사도세자의 안좋은 행실들을 모두 영조에게 말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도세자 는 영조의 명령에 의해 뒤주에 갇힙니다. 그 후 영조는 사도세자 생모인 선희궁에게 의견을 듣는데요. 선희궁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중록 “동궁(사도세자)의 병이 점점 깊어 바랄 것이 없으니... 대처분을 하소서” 생모가 사도세자 죽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 후 실제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습니다.

 

영조가 아버지로써는 너무 안 좋게 한 것은 맞지만 조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영정조 황금시대를 맞이 할 수 있게 방향을 맞혀준 것은 잘한 것입니다.

 

이상 사도세자 죽은 이유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들은 자식과 갈등이 심각할 것 같으면 다 포기하고 자식 마음대로 하게 하는 지혜로움이 필요하고요. 자식들도 부모님과 갈등이 심각할 것 같으면 피하거나, 도망가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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