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무왕 산둥반도 공격한 사건에 대해 알아봅시다

발해 무왕 산둥반도 공격한 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발해 하면 시험에 잘 나오는 것이 해동성국과 고구려 계승 국가라는 것입니다. 또 한민족 역사상 최고로 영토를 넓게 확장했던 나라도 고구려가 아니고, 발해입니다.

 

 

위의 그림이 발해 영토인데요. 고구려의 영토 + 지금의 러시아 쪽 영토를 모두 정복했었습니다. 고구려 땅 크기의 1.5배~2배 정도 되었던 것이 발해의 영토입니다.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고 고구려 유민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대조영과 그의 아버지인 걸걸중상은 요서 지방 영주로 끌려갑니다.

 

696년 거란족이 당나라의 폭정에 반발해 봉기를 일으키는데요. 고구려 유민 수장인 걸걸중상과 대조영은 말갈족 수장인 걸사비우와 함께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영주를 탈출합니다. 대조영은 추격하던 당나라 군대를 천문령에서 기습공격하여 제압합니다. 그 후 대조영이 세운 나라가 바로 발해입니다.

 

대조영에게는 아들이 2명 있었는데요. 첫째가 대무예 였고, 둘째가 대문예입니다. 여기서 대무예가 바로 이 포스트의 주제인 발해 무왕입니다.

 

발해 무왕은 고구려 광개토태왕 같은 정복 군주였습니다. 동생 문예는 꽤 오랫동안 당나라에서 숙위로 있었는데요. 숙위는 당나라 주변 국가의 왕자들이 당나라 궁궐에 머무르며 황제를 호위하는 것입니다. 요즘으로 치며 외교관 정도로 보시면 되십니다.

 

위에 말한 것처럼 발해는 당나라와 싸워 이겨가며 이룩한 국가입니다. 그래서 발해 무왕은 당나라에 대한 강경파였고요. 동생 문예는 당나라에서 오래 살다 보니 당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에 온건파 정도가 되었습니다.

 

722년 흑수말갈 추장이 당나라 현종을 찾아갑니다. 현종은 그를 크게 반기고 벼슬까지 내리며 환대하는데요. 그 후 흑수말갈은 당나라로 사신을 4번이나 파견하며 직접 당나라와 교류를 합니다. 725년 당나라는 흑수말갈 영토에 관청을 설치하고 관리까지 파견하며 발해를 압박합니다.

 

 

위의 지도가 당시 세력도 인데요. 지역 배치상 흑수말갈은 발해를 중간에 낀 상태로 당과 교류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교류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래서 발해는 이런 흑수말갈이 당나라와 밀착하는 행동이 위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흑수말갈을 이용해서 당이 발해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발해 무왕은 동생인 대문예를 시켜 흑수말갈을 토벌하게 합니다.

 

대문예는 당에 대해 잘 알았습니다. 흑수말갈을 토벌하면 당을 자극할 것이고 잘못하면 당이 쳐들어올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그래서 처음엔 형 말대로 흑수말갈 있는 데로 가지만 결국 그냥 혼자 돌아옵니다. 근데 형이지만 왕의 명을 어기는 것이라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당나라로 망명합니다.

 

 

이래서 대문예는 발해의 뒤통수를 한번 치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발해 무왕은 현재 거란과 돌궐이 당나라와 대치하는 상황이라 당나라가 발해에 쳐들어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흑수말갈을 정벌하라고 한 것입니다.

 

728년 4월 당나라에 숙위로 가있던 발해 무왕의 아들 대도리행이 사망합니다. 왕위 계승자의 사망으로 발해는 혼란에 빠집니다. 발해 무왕은 당 현종에게 대문예의 처형을 요구하지만 당 현종은 이를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자꾸 이런 요구를 하면 쳐들어갈 것이라 엄포합니다.

 

대문예가 당나라에 있으면서 발해 내에는 뚜렷한 왕을 이을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나라는 발해에게 까불지 말라고 엄포하고요. 이러니 당나라가 발해 왕권을 흔드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래서 발해 무왕이 산둥반도를 공격한 것입니다. 지배까지는 못 하고요. 그냥 견제만 하려고 정복한 다음 바로 빠지는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위의 사진이 당시 지도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산둥반도를 당시에는 등주라고 불렀습니다. 이 등주를 발해가 732년 9월 기습 공격한 것입니다.

 

등주는 당나라 동북방 해상 교역과 군사적 거점인 곳입니다. 배를 만들기도 하고, 중요한 무역 항구였습니다.

 

아래는 우리나라 역사 속의 등주입니다.

O 고조선 공격한 한무제 수군이 출발한 곳입니다.

O 고구려 침공한 수양제 수군이 출발한 곳입니다.

O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군대 출발한 곳입니다.

 

이렇게 등주는 중요한 곳입니다. 당나라가 강하기 때문에 등주를 점령했지만, 완전히 내 세력 안으로 만들지는 못하고요. 정복한 다음 바로 빠졌습니다. 당나라를 그냥 견제하기 위해 공격했던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마도산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인데요. 733년에는 마도산을 공격하여 성공합니다. 역시 세력 안으로 가지려는 것보다는 당을 견제하기 위해 치고 빠지기를 한 것입니다. 등주가 당수군의 출발지라면, 마도산은 육지의 당군 출발지였기 때문에 공격한 것입니다.

 

이상 발해 무왕 산둥반도 공격한 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발해의 멸망은 백두산 폭발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부 분열 때문에 큰 이유입니다. 만주 지역 땅 엄청 큰데 거란이 발해 수도까지 쳐들어가는 데 6일밖에 안 걸렸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방어막 없이 그냥 간 수준인데요. 그 정도로 발해 내분이 심할 때 강한 거란이 쳐들어와 멸망한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통일되어 발해 역사도 마음껏 연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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