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 기묘사화 에 대해 알아봅시다

조광조 기묘사화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조광조는 중종 때 사람입니다. 중종 14년(1519년)에 궁궐에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나뭇잎에 벌레들이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씨대로 갉아먹어 나뭇잎에 저 글자가 생긴 것입니다. 주초위왕은 달릴 주(走) + 닮을 초(肖)를 하면 나라 조(趙)라는 글자가 되어 ‘조 씨가 왕이 된다’란 뜻입니다. 중종이 이를 보고 괴이하게 여겨 조광조를 죽인 사건이 바로 조광조 기묘사화입니다.

 

 

위의 그림이 조광조 초상화입니다. 조광조를 직접 보며 그린 것은 아니고 조광조가 죽은 후 사람들의 말을 토대로 그린 초상화입니다. 조광조는 1482년~1519년 동안 살았습니다. 주요 이력으로는 17세에 유배 중인 김굉필 문하에서 수학했습니다. 그리고 34세에 대과에 합격하여 사간원 정언(정 6품)을 하고요. 37세에 사헌부 대사헌(종2품, 현재로 치면 검찰총장급)을 합니다. 그리고 38세에 유배지에서 왕이 내린 독약을 먹고 죽습니다.

 

 

34세에 벼슬살이를 시작에 37세에 검찰총장이 되는 굉장한 고속승진을 한 경우입니다. 그러나 벼슬살이 한지 4년 만에 결국 왕이 내린 독약을 먹고 죽습니다.

 

조광조는 원칙론자였습니다. 무엇이든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원칙대로 일해나가는 사람이었는데요. 그것 때문에 중종이 처음엔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둘이 사귀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중종이 조광조에게 잘 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조광조가 너무 원칙대로 하니까 그것으로 인해 왕의 자리가 위태롭다고 생각한 중종에 의해 결국 죽는 결과를 맞이하였습니다.

 

중종은 중종 대로 당시 신하들의 주도하에 왕이 된 상황이라 권력이 신하들에게 더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조광조가 원칙대로 할 것을 고수하며 신하들을 견제하자 왕의 처지에서 마음에 든 것도 있습니다.

 

조광조 업적으로는 소격서를 폐지한 것입니다. 소격서는 도교식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관청이었는데요. 조선은 유교 국가라 이를 배척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조광조 업적으로는 현랑과를 실시한 것(중종 14년 4월)입니다. 현량과는 학문과 덕행이 뛰어난 사람을 천거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입니다. 당시 과거제도가 시행 중이었는데요. 아무래도 과거시험은 시험을 위한 시험 같고 진짜로 능력 있는 사람을 과거시험만으로 뽑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현량과를 실행한 것입니다.

 

 

조광조는 중종반정 공신들을 다시 선발하자고 제안하는데요. 공신이 될만한 행동을 안 했는데도 공신으로 뽑혔다는 것입니다. 중종반정 관련해서는 중종 자신이 왕인 것에 대한 정당성도 관련 있는 일입니다.

 

조광조가 중종반정 공신들을 다시 가리자고 주장한 후(중종 14년 1519년, 10월 25일) 개정에 성공하고(중종 14년 11월) 4일만에 조광조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는 죽임을 당합니다.

 

당시 중종이 조광조를 탄핵하기 위해 다른 대신들에게 밀서를 주며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조광조는 처음엔 유배형을 받고 귀양을 갔다가 거기서 중종이 사약을 하사하여 사약을 먹고 죽습니다.

 

 

위의 사진이 주초위왕 글자대로 벌레들이 갉아 먹었다는 것을 재구성한 모습입니다.

조광조 기묘사화의 중요사항은 벌레들이 주초위왕이라는 글자대로 나뭇잎을 갉아 먹었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현대에 와서 나뭇잎에 똑같이 꿀로 글씨를 써봤는데 벌레들이 나뭇잎을 글자대로 갉아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벌레들이 나뭇잎을 글자대로 갉아먹었다는 말은 허구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중종이 조광조를 탄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상 조광조 기묘사화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원칙대로 하는 건 좋지만 그것도 너무 과하면 화를 당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적당한 게 제일 좋지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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