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덕술 같은 친일 경찰들이 득세했던 이유를 알아봅시다

노덕술 같은 친일 경찰들이 득세했던 이유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해방 후 한국은 미 군정의 신탁통치를 받습니다. 그때 미군은 경찰을 친일파로 대부분 채웠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미군은 한국의 역사를 너무 몰랐던 것일까요. 여기서는 미군이 왜 노덕술 같은 친일 경찰들로 경찰을 대부분 채웠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1946년 국립경찰 조직도를 나타낸 그래프인데요. 고위직 경찰의 80% 이상이 친일파로 채워진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아래의 사진은 존하지 미군 준장으로 한국에서 미 군정 신탁통치 기간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존 하지 사령관은 정부를 운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투부대인 야전군 출신입니다. 군인 중에서도 군정을 하거나 민사업무를 하는 군인들은 훈련을 따로 받습니다.

 

 

미국은 원래 한국에서 군정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따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해방된 후 한국 상황을 보니까 군정이 필요하겠다고 급하게 판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오키나와의 미 제24군단 사령관을 미 군정 최고자리에 임명하고 들어온 것입니다.

 

한국 최고 통수권자가 능력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로 배정받은 것입니다.

 

당시 미국이 급했던 이유는 아래입니다.

 

소련은 이미 한반도에 진입했고 미국은 그 당시 일본 본토도 못 들어갔습니다. 그 상황에서 소련의 진격을 멈춰야 했습니다. 그렇게 급조를 해서 한국에 군정을 세운 것입니다. 전문적으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는 사람은 사령관에서 밑에까지 아무도 없었습니다.

 

미 제24군단은 한국 상륙전에 한국에 대한 모든 정보를 조선총독부로부터 들었습니다. 조선은 공산주의자가 많고 빨갱이들이 많다고 한다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미국이 한국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일본군을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말이 “조선총독부 일본인 관리들은 당분간 재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고 통치 기관의 친일파 관리를 그냥 둔다는 것에 많이 황당했을 것입니다.

 

미국도 한국에서 친일파 관리들을 그대로 고용한 것에 대한 언론 비판이 있었습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뉴욕 타임스 1945. 9. 11.

“한국인들 항의 집회 열려 – 일본인 관료 유임 정책에 반발”

“그동안 한국은 일제의 수탈에 시달렸다.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이 모든 한국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이들(일본인)로 어떻게 제대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식민쓰레기들에는 무르고 우리가 해방시키려는 사람들에게는 억압적이어야 하는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1945년 9월 18일 발표를 하는데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시적으로 유임된 일본인들은 오직 그들의 기술력 때문에 한국인과 우리의 고용인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친일파가 통치해본 기술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이 해방되면서 일본인들이 모두 본국으로 가 한국 정부는 공백 자리가 많이 남았는데요. 편리한 통치를 위해서 일본인과 함께 일했던 친일파를 계속 기용하겠다는 말입니다.

 

미국도 이런 결정이 한국인들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항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미국이 노덕술 같은 친일 경찰을 기용해야 했던 더 중요한 사항이 있는데요.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생각하던 세계 그림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1945년 지나고 나니까 소련 같은 새로운 전체주의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 당시 한국의 상황은 사회주의 인사들이 대중적 인기가 많았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 한국에서는 미국이 사용할 사람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사회주의를 탄압했던 경험이 있던 사람들, 사회주의자 관련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노덕술 같은 친일 경찰이었습니다.

 

노덕술 같은 친일 경찰 고용은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계책이었습니다.

 

버치 보고서란 것이 있는데요. 미군의 레너드 버치 중위가 정치 고문으로 한국에 머물며 미 군정 중요 문서와 메모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레너드 버치는 제24군단 및 하지의 정치 고문이었는데요. 좌우합작위원회 조정, 미소 공동위원회 자문관 등 활동을 했습니다.

 

 

위의 남성이 레너드 버치이고요. 아이들은 딸들입니다.

아래는 버치 보고서의 일부 내용입니다.

“한국 경찰은 충성으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사령부가 안전했고 효율적으로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위의 사진은 반탁 시위를 하는 모습인데요. 반탁 운동 때문에 미 군정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미군이 깜짝 놀라는데요. 그때 오로지 한국 경찰만 반탁 운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믿을 수 있는 건 경찰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버치 중위도 후에 생각하니까 미 군정의 통치는 실패한 것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상 노덕술 같은 친일 경찰들이 득세했던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래서 자국의 운명은 자국민들이 결정해야 하고 그럴 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이 남의 나라로 가면 남의 나라 기준으로 우리나라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작권도 빨리 반환하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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