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암살 사건에 대해 알아봅시다

김구 암살 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범인은 안두희입니다. 당시 포병 소위였는데요. 그가 왜 김구 암살을 했는지와 그 배후에 대해 추정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백범 김구 선생입니다.

1949년 6월 현역 포병 소위 안두희가 김구를 찾아갑니다. 백범 선생은 당시 종로의 경교장에 머물고 있었는데요. 거기서 사무실도 사용하고, 가정집으로도 이용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안두희는 경교장에서 김구 선생 비서의 안내로 2층 김구 선생 집무실로 향합니다.

 

안두희: 선생님 안녕하십네까 이 안소위 다신 선생님을 뵙지 못할 것 같아서 찾아뵈었습네다.

김구: 왜 어디 외국에라도 나가는가?

안두희: 조금 있으면 출정합네다. 그나저나 세상이 어지러운데 선생님도 좀 자중하시면 좋갔습네다. 선생님을 우상으로 모시고 과잉 충성하는 자들만 믿지 마시라오. 다들 그것들을 미워합네다.

김구: 고약한 놈 네가 나에게 반동하느냐! 그건 민족의 반역이다 썩 물러가

(그 순간 안두희는 권총을 빼어들어 김구를 향해 쏩니다.)

안두희: 민족의 장애물! 가시라요!!

(안두희는 자신의 머리에도 총구를 겨눕니다.)

안두희: 기래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디. 죽은 셈 치고 살면 더 큰 것을 국가에 공헌할 것이야.

(안두희는 계단을 내려오며 모자와 계급장을 떼어내고 외쳤습니다.)

안두희: 내가 이 총으로 김구 선생을 죽였다!!

 

안두희가 계단을 내려오며 계급장을 떼고 모자를 던진 것은 자신이 군인으로서 일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일을 한 것인 것을 보이기 위함입니다.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먼저 그런 것인데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나타냅니다. 배후에 누가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는 안두희가 김구 암살을 하는 데 있어서 교사범으로써 배후에 누군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이 당시 안두희 모습입니다.

안두희가 김구 암살을 하고 5분 만에 헌병이 경교장에 옵니다. 그리고선 첫마디가 “누가 군인을 때려?!” 였습니다. 당시 흥분한 김구 비서와 관련자들이 안두희를 폭행했는데요. 그걸 막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안두희를 호텔 같은 곳에 데리고 가 거기서 있게 했습니다. 취조관들이나 수사관이 안두희에게 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안 의사 수고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술, 담배, 신문, 편지 면회가 자유로웠습니다.

 

심지어 안두희는 자기 재판을 방청하라며 모 방송국의 기자에게 방청권과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러면서 수사관들이 안두희에게 “이렇게 대우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안두희의 재판은 김구 암살 합리화의 선전장이었습니다. 당시 안두희는 군인이었고, 김구 선생은 민간인이었기 때문에 재판은 민간 재판관이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군인 재판관이 재판하였습니다. 1949년 8월 4일~6일 사흘 만에 안두희 재판은 끝납니다.

 

또 수사, 기소, 재판에 대한 공식기록이 없습니다. 재판정에 했던 안두희의 증언은 남아있는데 어떻게 수사가 이루어졌고 기소가 이루어졌는지 수가과정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안두희는 1949년 8월 6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습니다. 3달 뒤에 대통령의 지시 때문에 15년형으로 감형됩니다. 그 후 1950년 3월에는 10년으로 감형받습니다. 1950년 6.25가 터지고 안두희는 참모총장 지시로 형집행정지를 받습니다. 그리고 바로 현역군인으로 복귀되었습니다. 그 후 1951년 2월 남은 형기마저 면제를 받습니다. 그전에 이미 대위로 진급한 상태였습니다.

안두희는 군에서 제대하고 육군에 두부와 콩나물을 납품하는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당시 강원도에서 납세액 2~3위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안두희의 뒤에는 누가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크게 이승만, 미 군정, 그 밑에 누군가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한반도가 갈라질 낌새를 보이자 김구 선생은 이를 막기 위해 북한 사람들하고도 협상하려고 했는데요. 이런 점 때문에 남한의 우익에게 안 좋게 보였습니다. 또 반탁 운동의 거두라 미군도 싫어했고요. 이승만도 당연히 싫어했습니다. 그 외에는 이승만이나 미군 같은 권력자가 “오늘은 날씨가 안 좋네”라고만 말해도 알아서 기는 그 밑에 있는 또 다른 권력자일 수도 있습니다.

 

안두희는 후에 부천 소신여객 버스 운전사 시민 박기서에게 1996년 10월 23일 정의봉으로 피살됩니다.

 

이상 김구 암살 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너무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김구 선생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이런 안타까운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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