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시대 경대승에 대해 알아봅시다

무인시대 경대승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무인시대에 경대승은 이의방과 정중부 다음으로 최정점 권력을 잡았는데요. 무인시대 경대승은 누구이며 어떻게 권력을 잡았고 어떻게 운영했으며 어떻게 죽었는지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무신정권 권력 순서()와 경대승을 소개하는 글(아래)입니다.

무신정변으로 이의방이 권력을 먼저 잡고 후에 정중부가 이의방을 제거해 권력을 잡게 됩니다. 그러나 정중부 역시 이의방처럼 국정 운영을 잘할 생각은 안하고 사리사욕 채우기만 몰두합니다. 이 상황에서 민심은 불만이 굉장히 많이 쌓이는데요. 이렇게 정중부에 대한 불만이 쌓였을 때 앞에 나서서 정중부를 제거한 것이 경대승입니다. 경대승은 정중부를 제거하며 권력 최정점에 올라가게 됩니다. 당시 경대승 혼자 권력을 잡은 것은 아니고요 실력자들이 권력을 연합형태로 잡았는데 그 중 경대승 권력이 가장 큰 것입니다.



무인시대 경대승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경대승 경대승은 청주사람으로 부친 경진은 중서시랑평장사를 지냈다중서시랑평장사는 고려시대 정2품 관직인데요. 고려시대에서 2번째로 높은 관직이라고 합니다. 경대승은 기본적으로 금수저 집안 아들이고요

격구를 되게 잘했다고 합니다. 격구는 말을 타고 공을 하키처럼 하는 스포츠로 고려 시대 유행 했는데요 금수저+정중부와 친함+격구 되게 잘함의 3단콤보로 어린나이에 높은 관직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무인시대 경대승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경대승 나이 열다섯에 음서로 교위에 임명되었고 여러 차례 승진해 장군이 되었다.” 경대승은 나이가 어려 무신정변시기에 같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정중부를 죽이며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무신정변에 같이 참여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른 무신들과 차별화가 되었습니다.

 

무인시대 경대승이 주장한 논리 중에 하나가 복고(復古)입니다. 무신들이 정권을 잡고 불법을 너무 자행하므로 무신정변 이전이 시기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절요 명종 137“(경대승)항상 무인들의 불법한 일에 분개하였는데 개연히 복고에 뜻이 있어…….”

 


위의 사진은 격구 하는 사진()과 방자 들어가는 단어 정리한 것(아래)입니다.

무인시대 경대승은 복고에 뜻이 있다 보니 다른 무신정변에 참였했던 무신들에게 반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방이라고 결사대를 만들어 자기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고려사 열전 경대승 경대승이 겁이 나 결사대 백수십여명을 모아 자기 집에 두고 반란에 대비해 훈련시키며 이를 도방이라고 불렀다.”

 

당시 이의민이 의종을 직접 죽였는데요. 경대승이 복고를 주장하다 보니 이의민을 죽일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의민은 경주로 낙향해 버립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이의민 이의민이 돌아와서 두렵고 불안한 나머지 병을 핑계로 낙향해 버렸다.”

 

무인시대 경대승의 한계로는 자신이 이끄는 도방 부대원들이 노략질 등을 해서 잡혀가도 어떻게든 빼내었다고 합니다. 복고를 주장하며 자기는 권력남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명종 13년 무인시대 경대승은 어느 날 정중부가 나와 자신을 혼내는 꿈을 꾸는데 그 후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 30세의 나이에 죽게 됩니다. 그 후 경주에 있던 이의민이 올라와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상 무인시대 경대승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확실히 다른가 봅니다. 복고를 주장하면서도 제대로 그렇게 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듯합니다. 그래서 권력자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 세상의 상식을 스토리로 전해주는 블로그의 카카오 스토리 채널 소식 받기~


반응형
그리드형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