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이완용 출세 과정에 대해 알아봅시다

매국노 이완용 출세 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매국노 이완용 은 개화기 당시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을 정도로 높은 직위에 있었습니다. 현재 매국노 이완용 같다고 하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쌍욕인데요. 이런 매국노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을 정도로 어떻게 그렇게 출세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매국노 이완용을 칼로 찌르고 사형 당하신 이재명 의사 사진 (왼쪽)과 매국노 이완용 사진(오른쪽)입니다. 매국노 이완용은 이재명의사로부터 칼을 맞고 바로 죽지 않고 후유증으로 폐수 병을 앓다 죽었습니다. 아래 글씨는 매국노 이완용 의 글씨입니다. 매국노 이완용은 명필이었습니다.

 


매국노 이완용 은 몰락한 가문에서 태어나 186710살에 친척인 이호준의 양자로 입양됩니다. 1882년 매국노 이완용 은 25살의 나이로 과거 병과에 18위로 급제합니다. 4년 후 육영공원이라고 1886년 설립한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 있는데 과거급제자 중 유일하게 육영공원에 입학해서 4개월 동안 영어와 신식학문을 배웁니다.

 

영어를 4개월 배워봐야 얼마나 배우겠습니까. 매국노 이완용 의 영어실력은 미비했는데요. 당시 워낙 영어를 아는 사람이 없다보니 대충 알파벳이라도 아는 매국노 이완용 이 1887년에 초대주미공사관 참찬관으로 미국에 파견됩니다.

 

매국노 이완용 은 미국에서 생활하며 영어실력이 많이 늘었고 세계의 정세도 배울 수 있습니다. 1890년 귀국합니다.

 

당시 대한제국의 고종은 힘이 없어서 외교술로 외세를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고종은 미국을 중시했습니다. 그래서 고종에 의해 친미파들이 중용되었는데요. 그중 매국노 이완용 도 포함되었습니다. 매국노 이완용 은 초반에는 기본적으로 친미파였습니다.

 

매국노 이완용 은 친미개화파의 핵심인물로 출세를 계속 하게 됩니다.

 

매국노 이완용은 과거급제에서 총 28등으로 뽑혔습니다. 시험성적이 우수하지 않아서 보통 9, 잘 받아야 8품정도의 벼슬을 받는데 매국노 이완용은 바로 정 7품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매국노 이완용 의 양아버지인 이호준의 입김이 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호준은 당시 흥선대원군의 측근으로 호조판서를 지낸 정계의 거물이었습니다.



당시는 출세의 기준이 되는 것이 정3품 당상관이 되는 것인데 매국노 이완용 은 정3품 당상관을 5년 만에 할 정도로 초고속승진을 하였습니다. 이런 배경은 매국노 이완용 의 영어실력과 함께 양아버지의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매국노 이완용 은 이와 같이 친미인데 그 당시 외세의 영향에 따라 친미반청(1894), 친미반일(1896), 친미반러(1896년 이후)의 성향을 보였습니다. 친미는 기본적으로 깔고 우리를 억압하는 외세에 반대하는 성격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다 1900년대 들어 친미파 세력들이 몰락합니다. 매국노 이완용과 같이 할 친미세력이 사라졌고요 일본이 매국노 이완용에게 접근해 출세욕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때 넘어가서 친일파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은 것입니다.

 

이후 매국노 이완용은 대표적인 친일파 아이콘으로 자기혼자 잘살려고 일본에 충성하며 대한제국을 일본에 팔아먹는 대표 아이콘이 됩니다.

 

이상 매국노 이완용의 출세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매국노의 후손들 재산이라도 끝까지 추적하여 다 몰수했으면 좋겠네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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