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항쟁에 대해 알아봅시다

삼별초의 항쟁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고려는 화약 무기 보급 이전의 세계 최강 군대였던 몽골군을 상대로 28년이나 항쟁합니다. 그러다 결국 고려 원종은 1270년 몽골과 화약을 맺고 고려 왕조는 유지하면서 몽골에 복속하는 선택을 합니다. 이런 고려 원종의 몽골 복속에 반대하여 끝까지 몽골과 싸웠던 분들과 전쟁을 삼별초의 항쟁이라고 합니다.

 

 

위의 그림은 삼별초의 항쟁을 그린 그림과, 상황도입니다.

삼별초의 탄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신 정권 집권자였던 최우는 치안 유지, 특히 밤에 치안 유지를 위해 군대를 만드는데요. 그것이 야별초(夜別抄)입니다. 야별초는 만들어진 후 치안 유지를 하다 몸집이 점점 더 커져 좌별초(左別抄)와 우별초(右別抄)로 나뉩니다. 그 후 몽골군과 전쟁을 하다 몽골군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도망 온 사람들을 주축으로 신의군(神議軍)을 구성하는데요. 좌별초 + 우별초 + 신의군 해서 삼별초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별초(別抄)라는 말은 ‘특별히 뽑은 부대’란 뜻인데요. 지금으로 치면 ‘특수부대’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관련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려사절요 원종 11년 “도성 안에 도둑이 많으므로 최우가 용사(勇士)들을 모아 도적의 횡포를 막도록 하고…. 이들을 야별초라 불렀다.”

 

삼별초는 무신 정권의 핵심 부대로 많은 녹봉과 빠른 출세와 같은 특권을 누렸던 부대입니다. 간단히 말한다면 무신 정권의 친위대가 삼별초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려 원종은 무신 정권을 몰아내고 왕권을 다시 세운 분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무신 정권의 친위대셨던 삼별초의 적일 수밖에 없었는데요.

 

고려 원종은 무신 정권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몽골에 의해 다시 복위되었는데요. 고려 원종은 몽골에 가서 몽골군과 같이 개경에 와 강화도에 있던 무신 정권과 삼별초에 이젠 몽골에 항전하지 말고 개경에 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열전 배중손 “왕이…. 삼별초를 폐지한 후 그 명단을 가져오게 하자”

 

고려사 열전 배중손 “삼별초는 명단이 몽골에 알려질까 두려워 반역할 마음을 더욱 품게 되었다”

 

고려 원종이 정권을 잡으면 삼별초는 자신들에게 처절한 보복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고려 원종의 말을 듣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을 한 것입니다. 1270년 6월 1일 삼별초 거병을 합니다. 배중손이 삼별초의 난이 있을 때 초기에 삼별초를 이끌던 분입니다.

 

1270년 6월 3일 삼별초의 항쟁으로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로 자리를 옮깁니다. 삼별초는 고려 원종과 몽골이 둘 다 적입니다. 그래서 고려 내에 고려 원종과 반대하는 독자적인 정부를 만들었습니다. 또 수전에 약한 몽골군을 대비하여 섬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진도는 섬이라 어느 정도 몽골군으로부터 안전한 데다가 육지와도 가까워 나중에는 전라도 일대를 삼별초가 모두 석권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절요 원종 11년 “…. 배를 모아 재물과 자녀를 싣고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무려 천여 척이나 되었다”

 

삼별초는 진도의 용장성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용장성은 둘레 13km의 제법 큰 성이었습니다. 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3배 규모입니다. 배 타고 진도에 들어간 삼별초와 관련 사람들은 1만5천여 명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당시 군인이 아니라 일반적인 백성들도 모두 전쟁에 참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마다 전쟁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이 있었는데요. 여기서 몽골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려는 백성들은 삼별초를 구심점으로 몽골에 대항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삼별초 항쟁이 몽골에 대한 대항 전쟁으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진도로 간 삼별초는 일본과도 손을 잡으려 하고, 원나라와도 협상 회의를 하기도 하는데요. 결국, 1271년 5월에 고려 원종 군과 몽골군의 연합군이 진도로 쳐들어갑니다. 거기서 삼별초는 대패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사 세가 원종 12년 “김방경 등이 3군을 거느리고 진도를 공격해 적을 대파하고 가짜 왕 승화 후 왕온을 죽였다”

 

당시 삼별초를 이끄는 것은 배중손이지만 왕은 왕온이라는 인물을 내세웠습니다. 고려에 왕과 정부가 2개였던 시절입니다. 저기서 삼별초가 왕으로 내세웠던 왕온이 전쟁에 패해 죽임을 당합니다.

 

위의 전쟁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삼별초의 일부 무리는 제주도로 향합니다. 제주도에 항파두성이 있는데요. 거기를 삼별초 본거지로 이용했습니다. 삼별초는 제주도에서 1년 정도 내부 정비를 한 후 다시 육지 공략을 합니다. 그래서 전라도 남해안과 경상도 남해안 일대를 장악합니다.

 

당시 남해안 쪽으로 고려 수도 개경으로 가는 세금들이 배를 타고 이동했는데요. 그 길을 삼별초가 점령한 것입니다. 또 몽골 입장에서도 일본을 점령하기 전에 한반도를 자기네 구역으로 안전하게 만들 필요성이 있는데요. 제주도가 삼별초 본거지라 일본으로 쳐들어가기 불안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고려 원종과 몽골군은 연합으로 다시 제주도에 삼별초 정벌을 하러 갑니다.

 

제주에서 삼별초를 이끌던 김통정은 제주도 전쟁에서 져 자결합니다. 그래서 삼별초는 완전히 진압됩니다.

 

이상 삼별초 항쟁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고려 백성들의 몽골 저항 정신은 삼별초를 구심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계 최강 군이었던 몽골과 끝까지 대항했던 한민족을 사랑한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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