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실제사진 같은 그림 을 봅시다

기황후 실제사진 같은 그림을 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기황후는 고려 출신이면서 세계제국이던 원나라의 황녀가 되신 분입니다. 대단하신 분이죠. 기황후가 산 연대는 1315년~1369년인데요. 카메라 발명은 1839년입니다. 기황후가 돌아가신 후 한참 뒤에야 카메라가 발명되어 기황후 사진은 없습니다. 하지만 기황후 실제사진 같은 기황후를 그린 그림은 있습니다. 아래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에 그림 이름은 불랑국헌마도권인데요 저기에 표시된 분이 기황후입니다. 기황후 실제사진같이 기황후 실제 모습과 제일 유사한 그림입니다.

 

 

불랑국헌마도권은 교황이 원나라 황제인 순제에게 프랑스의 말을 선물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원나라 화가 주랑이 그린 그림입니다.

 

 

위의 빨간색 원이 기황후 실제사진 같은 기황후 모습입니다. 불랑국헌마도권에서 기황후 부분을 확대한 것입니다.

 

위의 기황후 실제사진 같은 그림을 통해 기황후는 외모보다는 다른 미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기황후는 몽골 여인들과 다른 유교적 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원사 후비 열전 “기황후는 일이 없으면 여효경(女孝經)사서(史書)를 읽으면서 역대 황후 가운데 어진 사람을 모범으로 삼았다.”

 

원사 후비 열전 “사방에서 바치는 공헌 품 가운데 진미가 있으면 먼저 태묘에 보내 제사를 올린 뒤에야 그것을 먹었다.”

 

원사 후비 열전 “수도에 큰 기근이 들었다…. 기황후는 금은과 곡식 및 비단을 내어…. 10만여 명의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기황후는 황실 내에서도 현명하게 처신을 했습니다.

 

 

기황후는 공녀로 고려에서 몽골로 넘어갔는데요. 공녀는 고려가 원나라에 바치는 여자들입니다. 세금 바치듯 원나라에 여자를 바친 것입니다. 공녀는 보통 10대 때 원나라에 끌려갑니다. 그래서 고려 집들은 딸을 낳으면 쉬쉬했다고 합니다.

 

서민들 딸 뿐만 아니라, 고관대직이나 황족도 공녀로 끌려갔습니다. 신분이 높은 공녀들은 원나라의 높은 관직인 사람과 결혼을 하기도 했으나 대부분 궁녀나 종처럼 허드렛일하면서 여생을 보냈습니다.

 

원나라 순제의 제1 황후로 타나실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궁녀였던 기황후가 원 황제 순제로부터 이쁨을 받으니까 자주 매질을 했다고 합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원사 후비 열전 “기황후가…. 날마다 총애를 받았다. 타나실리 황후가 이를 질투하여 자주 매질하면서 욕보였다.

 

기황후 실제사진 같은 그림에서 보이는 기황후가 대단한 분이신 것은 맞지만 고려 관점에서 좋은 분은 아닙니다. 기황후를 중심으로 고려에서는 부원 세력(원나라에 충성하면서 고려에 피해를 주는 부류, 친일파 같은 느낌)이 형성되어 고려의 독립과 자주에 많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민왕이 일사천리로 고려에 있던 기황후 가문 사람들을 다 죽인 것입니다.

 

또 기황후는 원나라의 멸망에 영향도 많이 미쳤다고 하는데요. 원나라가 쇠락해 몰락할 때도 1만여 명이나 되는 군사들을 동원해 고려를 친 것입니다. 여기서 원나라군은 대패하고요.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는 등 원나라 어려움이 더 심해지는 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이상 기황후 실제사진 같은 그림을 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하지원 씨가 열연한 기황후가 얼마 전에 했는데요. 전 마지막 회만 봤는데 재밌는 듯합니다. 하지원 씨도 좋아하고 백진희 씨도 좋아하니까 기회가 되면 기황후 드라마를 볼 생각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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