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죽음 전 상황에 대해 알아봅시다

단종의 죽음 전 상황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단종의 죽음은 모두 아시다시피 삼촌인 수양대군에 의해 1457년 자행되었습니다. 기록에는 단종이 자살했다고 나와 있는데요. 그게 어디 진짜로 자살이겠습니까? 진짜 자살했다 해도 자살 당한 거지요. 수양대군은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하여 조카인 어린 단종을 죽인 것입니다. 조선 왕가 역사에서 제일 슬픈 상황 중 하나입니다. 단종이 한 20살 정도에만 왕이 되었어도 이렇게 슬프게 죽진 않았을 텐데요. 과연 단종의 죽음 전 상황은 어떻겠기에 삼촌인 수양대군이 왕인 조카 단종을 죽일 수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가계도는 단종이 왕이 되었을 때 가계도입니다.

세종의 다음 왕이 문종이고 문종 다음 왕이 단종입니다. 단종 다음 왕이 수양대군(세조)이고요. 세종은 성군인데요. 자기 재위 당시 이미 후사 문제도 처리한 상황입니다. 근데 문종이 39살 왕 오는지 2년 만에 갑자기 너무 빨리 죽습니다. 그래서 단종이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갑자기 왕이 된 것입니다.

 

 

문종은 27살에 아들인 단종을 낳습니다. 당시로서는 왕인 것을 고려할 때 굉장히 늦게 아들을 본 것인데요. 단종 위에 경혜공주라고 단종 친누나가 있습니다. 단종보다 5살 위인데요. 문종이 첫째로 경혜공주를 낳고 둘째로 아들인 단종을 낳은 것입니다.

 

문종이 이렇게 자식을 늦게 낳은 이유로는 이혼을 두 번이나 해서입니다. 처음에 결혼했을 때는 아내가 안동김씨 집안으로 집안이 매우 좋았는데요. 문종이 아내(휘빈 김씨)를 별로 안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자리도 별로 안 하고 했는데요. 이 첫째 아내가 문종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하여 문종이 좋아하는 궁녀의 신발을 불에 태워 재를 문종에게 먹입니다. 그렇게 하면 자기(첫째 아내)를 좋아하게 된다는 미신이 당시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하다 걸려서 세종이 이혼을 시킵니다.

 

그 후 문종이 좋아하게 이번에는 얼굴을 보고 둘째 아내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뽑은 문종 둘째 아내(세자빈 순빈 봉씨)는 동성애자였습니다. 궁녀하고 같이 잠자리를 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래서 역시 세종이 이혼을 시킵니다.

 

세 번째에 현덕왕후와 문종이 결혼하는데요. 그 후 낳은 자식이 경혜공주와 단종입니다. 그래서 문종은 늦게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1441년 현덕왕후 권 씨는 단종을 낳고 출산 후유증으로 바로 돌아가십니다. 단종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은 것이고요. 그 후 문종의 어머니인 소헌왕후 심 씨가 1446년 돌아가시고(단종 할머니), 세종대왕이(단종 할아버지) 1450년 돌아가십니다.

 

몇 년 사이에 왕실에서 줄초상이 납니다. 그래서 장례 치르느냐 문종이 결혼할 타이밍을 놓칩니다. 문종은 조선 왕가에서 유일하게 정비를 두지 않은 왕으로 기록됩니다. 문종(단종 아버지) 역시 1452년 죽습니다.

 

 

그래서 몇 년만의 단종 친인척들은 다 죽어 단종 방패막이가 없어지고요. 단종과 단종 친누나와 삼촌들만 남은 것입니다. 여기서 단종 삼촌인 수양대군이 단종을 보필할 생각은 안 하고 일을 꾸며 단종의 죽음을 끌어내는 행동을 취한 것입니다.

 

세종은 고기를 좋아하고, 운동을 잘 안 하는 덕에 평생 성인병으로 종합병원처럼 아프게 살았습니다. 훈민정음 창제 같은 세종대왕 업적은 이렇게 세종대왕이 아픈 과정에서 이루어낸 정신승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종대왕이 신하들에게 무언가를 시키면 신하들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아니 되옵니다.”입니다. 그래서 차근차근 신하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는데요. 세종대왕은 가뜩이나 아파죽겠는데 이렇게 신하들을 설득하는 것을 많이 부담스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들에게 주요임무를 많이 맡겼는데요.

 

그중에서 수양대군(이름: 이유 1417년)과 안평대군(이름: 이용 1418년)에게 정부 업무를 많이 시켰습니다.

 

수양대군에게는 주로 명사신 접대, 왕의 전지(명령서)를 각 관서나 신료에게 전달하는 것, 여러 관서의 제조(提調)로 임명, 집현전 편찬 작업 감독을 시켰고요.

 

안평대군에게는 조정의 불사 등 왕실과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게 시켰고, 집현전 편찬 작업 감독을 시켰습니다.

 

이래서 수양대군은 가뜩이나 성격이 원래 야망이 있었는데요. 주요 정부 업무를 계속하다 보니 그 야망이 더 커지게 된 것입니다.

 

종친불사 라는 말이 있는데요. 왕의 8촌 이내 친족은 벼슬을 하지 못 하게 하는 제도가 고려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이를 어기고 자기 아들들을 나라 주요 업무에 계속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단종의 죽음 전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지요. 그것을 스스로 컨트롤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나니까요. 스스로 욕망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대해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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