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 윤씨 사건요약 을 해드리겠습니다

폐비 윤씨 사건요약 을 해드리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역사서를 기반으로 아는 것들인데요. 역사서에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가 있습니다. 정사는 각 왕조가 공식 편찬한 사서입니다. 우리가 정설로 아는 역사가 바로 정사에 기록된 것입니다. 야사는 민간에서 개인이 저술한 역사인데요. 이것은 우리가 역사로 보지 않습니다. 소설 같은 느낌으로 아시면 되십니다. 이렇게 폐비 윤씨 사건요약 포스트를 하며 정사와 야사 관련 이야기를 한 이유는 우리가 흔히 아는 폐비 윤씨 사건이 야사의 기록이 많이 알려져서입니다. 드라마가 재미 위주로 만들어지다 보니까 재밌는 야사 내용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진실과 다른 내용이 진실인 것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아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폐비 윤씨 사건 요약 내용입니다. 연려실기술이란 책의 기묘록이란 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야사입니다.

 

 

성종 10년(1479년)

성종이 후궁의 처소를 많이 드나들었는데요. 이 사실을 안 중전 윤씨는 성종과 부부싸움을 합니다. 중전 윤씨는 싸움 도중 실수로 임금의 용안(얼굴)에 상처를 내고(손톱자국) 마는데요. 이 소식을 들은 인수대비(성종 어머니)는 크게 노합니다. 그래서 인수대비가 중전 윤씨를 폐비 윤씨로 만든 후 궁 밖으로 쫓아내라고 명합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성종 13년(1482년)

성종이 내시를 보내 폐비 윤씨를 염탐하게 합니다. 이를 안 인수대비가 내시를 불러 성종에게 할 보고를 거짓으로 하라고 명합니다. 폐비 윤씨가 죄를 뉘우치지 않는다고 거짓 보고를 하라고 하는데요. 내시가 그렇게 성종에게 보고를 합니다. 인수대비가 죽이라고 하고, 성종도 죽이라고 하여 사약을 내리게 죽게 하였습니다.

 

여기까지가 야사에 있는 폐비 윤씨 사건요약입니다.

 

아래부터는 실록에 있는 정사 폐비 윤씨 사건요약 내용입니다.

 

성종 10년(1479년)

중전 윤씨 생일 전날 중전 윤씨가 후궁의 처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하는 성종에게 찾아갑니다. 그래서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당시 밤의 사건인데요. 성종과 중전 윤씨가 싸운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히 어떻게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사항은 둘만의 비밀입니다. 이 사건 후 성종이 굉장히 빡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종은 중전 윤씨를 폐비 윤씨로 만들고 궁에서 쫓아냅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성종 13년(1482년)

궁 밖으로 쫓겨난 폐비 윤씨의 어려운 형편을 안 대신들이 처우개선을 해달라고 성종께 요청합니다. 폐비 윤씨문제로 대신들과 성종은 크게 대립합니다. 성종은 처우개선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대신들은 집요하게 계속 폐비 윤씨의 처우개선을 요청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신들하고 대립이 깊어진 성종은 진짜 빡쳐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내려 죽이게 합니다. 그래서 폐비 윤씨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사약 먹고 죽습니다.

 

여기까지가 정사에 있는 폐비 윤씨 사건요약입니다.

 

야사에는 인수대비가 악당 역할을 했는데요. 실제로는 성종이 안 좋게 한 것입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라 남자를 떠받치는 문화가 있어서 남자였던 성종을 보호하느냐 그렇게 인수대비가 죽이라고 했다는 등의 얘기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 폐비 윤씨 사건요약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진실이 아닌데 진실인 것처럼 아는 것들도 많지요. 우리는 단순하게 보고 싶은 데로 믿지 말고, 진실을 바라보는 눈을 길러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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