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사홍 에 대해 알아봅시다

임사홍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임사홍은 1449년 출생, 1506년 사망합니다. 성종 시대와 연산군 시대 사람이고, 연산군 시대에 연산군과 짝짜꿍이 잘 맞아 연산군의 욕구대로 흥청망청하는데 손발이 되어준 대표적 간신 혹은 소인입니다. 중종반정 때 반정 세력들이 연산군을 치기 전 먼저 임사홍에게 가 임사홍을 죽입니다.

 

 

위의 그림은 임사홍 가계도입니다.

성종 시대와 연산군 시대에 임사홍을 소인으로 부른 것만 111건에 달합니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의리에 밝고, 소인(小人)은 잇속에 밝다고 했는데요. 그래서 임사홍이 소인으로 불린 것입니다.

 

 

사람을 군자 아니면 소인으로 봤는데요. 이런 이분법적인 판단은 현대 기준으로 올바르지 않습니다. 군자와 소인 중간인 사람들이 더 많을 테고, 소인인 분들도 그렇게 소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아픈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래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가능한 전체적으로 판단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서에 임사홍은 소인이라고 많이 불리므로 왜 그렇게 소인으로 불리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임사홍이 소인으로 불린 이유 1. 채홍사였다

채홍사는 연산군에게 전국의 미녀들을 받치는 직책입니다. 연산군 12년에 채홍사라는 관직을 만드는데요. 연산군이 잔치하고 놀려면 여자들이 필수였습니다. 그래서 연산군의 오락 혹은 유희를 위하여 채홍사라는 관직을 만든 것입니다.

 

지역에서 미녀를 뽑을 때는 몇 명을 뽑을지 할당량이 있었는데요. 그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일반 아가씨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나 첩까지도 데리고 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 기녀로 뽑히지 않기 위해 채홍사인 임사홍에 뇌물을 엄청나게 바쳤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가 임사홍이 소인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임사홍이 소인으로 불린 이유 2. 대간과 짜고 도승지를 탄핵함.

대간은 조선시대언론 역할을 하던 분입니다. 관직에서는 왕이나 대신보다 많이 낮지만, 논리로 왕과 대신들과 함께 올바른 길고 가게 토론하시던 분들입니다. 이런 대간 중 한 명과 짜고 도승지를 탄핵한 사건이 밝혀졌습니다. 이것은 당시 굉장히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위의 사건은 붕당을 맺는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요. 쉽게 얘기해서 자기 패거리를 만들어서 패거리 정치를 했다는 뜻입니다. 붕당은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죄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위의 이유로 원래 대간 들이 참형(사형)에 처하자고 주장했는데요 위의 임사홍 가계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임사홍의 맏며느리가 현숙 공주로 예종의 딸입니다. 현숙 공주가 식음을 전폐하며 임사홍을 살려달라고 성종에게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성종은 임사홍을 참형에서 유배를 하는 것으로 바꿔주고요. 매를 맞고 귀양을 가는 것인데 보석금(속전)처럼 돈으로 대신하게 한 다음 그냥 귀양을 갑니다.

 

임사홍이 소인으로 불린 이유 3. 귀양지에 있지 않고 한양에 알박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임사홍은 귀양지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근데 현숙 공주가 아프다는 핑계로 임사홍은 서울 자기 집에 와서, 다시 귀양지로 안 가는 것이었습니다. 성종은 현숙 공주 병이 다 낳으면 임사홍을 내려보내겠다고 하는데요. 현숙 공주가 안 낫습니다.

 

한양에서 한참 있다가 대간 들의 공격으로 임사홍은 귀양지로 돌아갑니다.

 

임사홍은 성종 11년 유배형이 사면 되고요. 성종 17년 직첩을 돌려받아 복권됩니다. 하지만 대간 들의 반대로 실제로 벼슬살이는 하지 못합니다.

 

임사홍은 계속 벼슬살이를 못 하다가 26년 만에 연산군 때 겨우 정계에 복귀합니다. 임사홍의 아들 임숭재가 연산군과 찰떡궁합이었는데요. 연산군이 있는 궁궐과 임숭재 집 사이에 비밀통로를 만들 정도로 둘이 친밀하며 연산군이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임숭재한테 말해서 하게 했습니다. 그런 임숭재가 상소를 올려 임사홍이 벼슬살이를 다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임사홍이 소인으로 불린 이유 4. 연산군에게 신임을 얻으려는 임사홍

연산군은 시대의 폭군이었습니다. 망나니짓도 상상을 초월했는데요. 이런 연산군과 찰떡궁합인 아들 임숭재의 노력으로 정계에 복귀하고, 임사홍은 연산군의 신임을 얻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소인으로 찍힌 것입니다.

 

임사홍이 소인으로 불린 이유 5. 갑사 사화의 불씨를 댕겼습니다.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을 이유로 연산군이 사림파를 대거 숙청한 사건입니다. 이 갑자사화의 불씨를 처음 당긴 사람이 바로 임사홍입니다.

 

이상 임사홍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악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혐오해 하지 말고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래야 다시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가능성이 생깁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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