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채 역사를 알아봅시다

국공채 역사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국공채란 공적인 기관이나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뜻합니다. 채권은 유가증권의 하나로 지급 청구권이 표시된 채무증권입니다. 사람들이 종이를 받으면서 나중에 해당 날짜가 되면 그 종이와 돈을 바꿔주겠다면서 발행자가 돈을 받고, 일반인은 돈을 맡겨놓는 것입니다. 이자도 받고요. 이런 국공채가 언제 생겼는지, 그리고 주요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국공채는 약 60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생겼습니다. 당시 이탈리아 피렌체는 전쟁을 했는데요. 병사들에게 줄 월급도 필요하고, 전쟁물자를 사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세금을 더 많이 걷었는데요. 세금을 너무 많이 걷자 시민들에게 불안이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국공채를 발행하여 시민들에 돈을 꾸는 방식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국공채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은 로스차일드가입니다. 1815년 6월 18일 나폴레옹이 다시 재기를 하기 위하여 워털루 전투를 했습니다. 나폴레옹과 전투를 한 사람들은 영국 등 연합군이었는데요. 전투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국공채를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했는데요. 로스차일드가가 워털루 전투에서 연합군이 이길 것을 예견하고 영국 채권을 엄청나게 샀습니다. 그 후 실제로 영국이 포함된 연합군이 워털루 전투에서 이기고요. 영국에서 발행한 국공채의 시세는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바로 이 사건이 국공채를 통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국공채는 미국 남북전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1861년~1865년) 남북전쟁은 미국의 남부와 북부가 나뉘어 전쟁한 사건입니다. 당시 남부는 전쟁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국공채를 발행하는데요. 남부가 질 것으로 예견되어 그 국공채를 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남부가 지면 남부에서 발행한 국공채는 휴짓조각이 되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국공채를 사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부는 목화를 채권 지급 담보물로 내놓았습니다. 남부는 농업이 발달하여 목화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는데요. 북부가 리버풀 항구를 점령하며 남부는 타격을 받습니다. 목화가 수출되는 길이 바로 리버풀 항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금 부족을 겪은 남부는 후에 남북전쟁이 집니다.

 

 

아르헨티나를 통해서도 국공채 관련 사건이 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은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자원을 통해 부국을 꿈꿀 수 있었는데요. 아르헨티나는 정부의 무능으로 국공채가 쓰레기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자금 부족으로 돈을 많이 찍어내는데요.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엄청나게 옵니다. 하루에 상점 물건 가격이 3번 바뀔 정도였다고 합니다. 아르헨티나 국공채의 이자율 5%이면,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은 10% 넘게 와서 아르헨티나 국공채는 점점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을 겪은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국공채의 가치가 곤두박질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 국공채 역사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정부에서는 돈을 굉장히 많이 풀었는데요. 조만간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요. 인플레이션 때는 국공채 가치가 하락할 수 있으니 투자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부자 되세요!!

 

반응형
그리드형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