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숙종 에 대해 알아봅시다

조선 숙종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숙종은 조선의 19대 왕입니다. 출생은 1661년, 사망은 1720년입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여자 장희빈의 남자가 바로 숙종이었습니다. 숙종, 장희빈, 인현왕후(중전 민 씨)는 삼각관계였습니다. 숙종과 장희빈은 애틋한 관계였지만 결국 숙종이 장희빈을 사사시킵니다. 실록에는 숙종이 장희빈에게 자진(자살)하라고 명을 내리는데요. 신하들이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할지 숙종에게 문의하니까 사사(독약 사형)하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장희빈이 사사했다는 기록은 없고 며칠 후에 장희빈이 자진(자살)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위의 명단은 조선 숙종의 환국 때 처형당한 인물들입니다. 첫 번째가 첫째 환국, 두 번째가 두 번째 환국, 세 번째가 세 번째 환국 때 처형당하신 분입니다.

조선 숙종은 환국(換局: 국면을 바꾸다)을 3번 하는데요. 당시 서인과 남인이 갈라져 붕당정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하들이 편 갈라서 싸우니까 그걸 이용해 왕에 유리하게 붕당 세력을 처형한 것입니다. 그래서 숙종은 왕권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경신환국(1680년 서인 집권) -> 기사환국(1689년 남인 집권) -> 갑술환국(1694년 서인 집권) 순으로 했습니다. 14년간의 환국 때 사형당한 사람은 총 51명이고요. 파직이나 유배된 사람까지 포함하면 모두 총 376명입니다.

 

 

탕평은 당쟁을 해소하기 위해 각 정치세력의 균형을 꾀하는 정책입니다. 흔히 영정조 때 많이 행해졌다고 하는데요. 이런 탕평 정치가 조선 숙종 때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이용해 왕권을 강화했는데요. 조선 숙종은 45년 10개월간 재위를 하면서 영조(52년)에 이어 2번째로 오랫동안 왕에 재위하셨던 분입니다.

 

조선 숙종과 청나라의 강희제,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모두 동시대 인물입니다. 저들의 공통점은 강력한 왕권을 가졌단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당시 세계적 정세상 왕권 강화를 하는 분위기는 조선도 타고 있었습니다.

 

조선 숙종은 정통성이 완벽한 얼마 안 되는 왕입니다. 조선은 총 27명의 왕이 있었는데요. 그 중의 적장자로 왕이 되신 분은 7명입니다. 그리고 적장자에서 다시 적장자로 이어지는 것이 문종-단종과 현종-숙종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조선 500년 역사를 통틀어서 2번 있었던 완벽한 정통성의 주인공입니다.

 

조선 숙종은 14살에 왕이 됩니다. 중학생 때 왕이 된 것입니다. 보통 어린 나이에 왕이 되면 20살까지는 수렴청정(어린 왕을 대신해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대신 정사를 돌보는 것)을 합니다. 하지만 숙종은 엄청난 정통성이 있는 데다가 똘망똘망 했다고 합니다. 또 숙종은 7세부터 세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왕 교육을 어린 나이지만 몇 년 동안 받은 상황입니다. 다른 사항은 숙종이 11세 때 결혼을 했는데요. 그래서 어른으로 취급받은 것입니다.

 

조선 숙종은 중학생 때 왕이 되고 백성들의 세금을 깎아주고요. 암행어사를 계속 보내어 지방 관리들이 제대로 하는지 감시를 했습니다.

 

장길산이라고 황해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도적의 우두머리가 있는데요. 조선의 3대 도적은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입니다. 그중 장길산이 조선 숙종 때 활동했습니다.

 

조선 숙종 때 한민족 최초로 화폐가 통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고려나 태종 때도 화폐를 발급했는데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숙종 때 상평통보(엽전)를 발행하여 처음으로 제대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것은 당시 대동법(세금을 쌀로 통일해서 내는 것)이 시행 중이라 화폐가 널리 활용되기 좋은 환경을 가진 덕분입니다. 또 당시 조선은 일본으로 인삼을 수출하는 대신 은을 받고, 받은 은을 중국에 주면서 무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동법도 전국에서 시행되어 조선 관청은 필요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과 거래 해야 했는데요. 이런 것들 때문에 상공업이 발달하고 화폐가 널리 사용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동법도 처음 시행된 지 100년만인 숙종 때 전 지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숙종 당시인 1695년(숙종 21년) 정도에 4년 정도 이상기온 현상이 일어나 대기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식량이 부족하여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숙종은 청나라로부터 쌀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조선 숙종 때 백두산 지역을 중심으로 국경이 확정됩니다. 잘못하면 백두산보다 남쪽으로 국경이 생길 수 있었는데요. 숙종 때 백두산 지역을 우리나라 영토로 확고히 하였습니다. 백두산정계비를 세워 청나라와의 국경을 확정한 것입니다.

 

조선 숙종 때 안용복이란 인물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라는 것을 확고히 합니다. 안용복이란 인물의 자세한 사항은 모르는데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조선의 관리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노비라는 말도 있고, 어부라는 말도 있는데요. 이분이 일본에 잡혀가서 조선 관리라 속이고 울릉도와 독도의 영토가 조선 거라는 문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다가 쓰시마에서 해당 문서를 뺏겼다고 하는데요. 어쨌든 안용복이란 분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이라는 것을 확고히 하셨습니다. 17세기 후반까지는 일본이 독도를 조선 영토로 인정했다는 근거입니다.

 

 

위의 사진은 북한산성 모습입니다.

숙종 37년 1711년에 한양을 뒤에서 지켜줄 12.7km의 북한산성이 완성됩니다. 약 40년간 논의 끝에 6개월 공사하고 완공한 것입니다. 숙종은 환국 등으로 국정이 불안정할 때는 큰 공사를 못 하다가 국정이 안정화되어 북한산성을 건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은 중앙군 체제를 임진왜란 후에 5위 체제에서 5군영 체제로 바꾸는데요. 첫 번째 출발이 훈련도감 창설입니다. 이 5군영을 완성한 왕도 숙종입니다.

 

 

위의 지도는 숙종에게 바친 병풍 지도인데요. 요계관방지도라고 하는 이이명이 제작한 군사적 목적의 국경지도입니다. 한반도 북쪽과 만주, 중국 본토 등의 지역이 담긴 지도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지도가 1급 군사기밀이었습니다. 지도를 보여주는 것은 나라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저런 지도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은 조선 숙종 시대를 거치면서 거의 다 회복합니다. 조선의 하드웨어는 다 회복했다고 하는데요. 이런 숙종의 조선 회복 후에 영정조 시기를 맞이하여 조선은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사육신과 단종, 소현세자빈 강 씨 등을 숙종이 복권시킵니다.

 

이상 조선 숙종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장희빈 관련 스토리가 재밌기는 하겠지만 저런 숙종의 국정운영은 한민족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을 회복시켜 주신 숙종 님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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