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철종 이야기를 하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철종은 19세기 안동김씨 세력이 세도정치를

하던 시기의 왕인데요.

철종은 어떻게 왕이 됐고

어떻게 정치를 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발전하고 있을 때 안동김씨 세력의

세도정치 때문에 조선만 뇌물 받는 거에 빠져서

쇠락의 길로 빠져든 것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저것은 철종이 왕으로 정해져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던 철종을 궁중에 있는 사람이 데리러가는 상황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철종은 왕가의 집안이긴 하나 철종 큰아버지는

역모로 할머니는 가톨릭신자라 사형을 당해서

강화도로 쫓겨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위에 보이시는 후보들이 왕이 될 수 있는 후보

들인데요 이하응이 흥선대원군이고 이원범이

철종입니다. 안동김씨 세력은 제일 만만하게

보이는 이원범을 선택한 것입니다.

 


철종의 아버지와 할머니덕분에 철종이 왕으로

선택된 데는 비난받을 건수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세력의 반발이 안 생기게 하기 위하

여 안동김씨 세력은 철종의 큰아버지나 할머니등

의 활동이 있는 기록들을 찾아서 다 저렇게

오려내는등의 수법으로 가립니다.

 


철종은 안동 김 씨인 순원왕후에 의해 선택돼

어지고 그의 양아들로 들어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순원왕후가 처음에 수렴첨정을 하고

안동김씨 집안의 여자를 비로 들이게 됩니다.

처음엔 순원왕후가 수렴첨정을 하여 철종은

아무것도 못하지만 순원왕후가 죽은

후부터 백성들을 위한 개혁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당시 매관매직으로 엄청난 돈을 들여 벼슬길

에 오른 벼슬아치들은 권력을 이용해 썼던 돈을

뺏으려고 힘을 쏟아 붇습니다.

환곡제도를 이용한 백성들 착취하는 법을 보겠

습니다.

환곡제도는 식량이 떨어졌을 때 백성이 곡식을

꿔서 나중에 추수가 된 후에 꿨던 곡식의양+이자를

갚게 하는 제도인데요.

강제로 곡식을 대출받게 하기도 하고 거짓으로

장부에만 곡식을 대출받았다고 기록하는 등의

방식으로 백성들을 착취합니다.

당시 철종도 이런 부분을 알고 부정부패한

벼슬아치들중 심한사람들의 이름을 자기 방에 붙여

놓을 정도로 신경 쓰고 있었는데요.

안동김씨 세력과 연루된 사람들이라 함부로

못했습니다.

 


이런 세도정치의 횡포 때문에 1862년 임술농민봉기

가 일어났습니다. 19세기는 민란의 시대로

홍경래의 난이 가장 먼저 일어나고 그다음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난 다음 마지막으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납니다.

 


철종은 자기 방에 안민(安民) 이라는 글자를 적고

백성들의 빚탕감, 환곡 분배, 대출 받은 곡식의

납부 연기 등의 정책을 폅니다.

그러나 안동김씨 세력들 때문에 쉽지 만은

않았습니다.

 


농민봉기가 장기화 되자 철종은 삼정이정청이라

는 기구를 설치하여 삼정(세금)의 문란을

해결하려고 해 어느 정도 성과는 내게 됩니다.

하지만 역시 안동김씨 세력이

조선의 뼛속까지 파고들어가 있어 마음처럼 잘

안되게 됩니다.

 


당시 서원은 본래 학문을 연구하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기능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면세나 패거리 문화의 온상이 된다고 철종은 인지

하고서 없애려고 하는데요. 다 없애는 게 아니라

자기가 왕이된 이후의 서원만 없앤다는 소심한

결정을 합니다. 그만큼 안동김씨 세력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 철종입니다.

 


이후 33세의 이른 나이에 철종은 승하하게

됩니다. 그 후 고종이 왕이 되면서 흥선대원군의

시대가 오고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는 막을

닫게 됩니다.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