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에 대해 알아봅시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는 여운형 선생이 만든 단체입니다. 일본이 패망하면 조선 땅이 진공상태가 될 것이니까 그때 나라를 건국하겠다는 미션으로 만든 단체가 바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입니다.

 

 

위의 사진은 여운형 선생입니다. 체력이 국력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저런 웃통을 벗은 모습을 노출하셨습니다.

1943년 여운형 선생이 일본 도쿄를 가는데요. 미군 전투기의 폭격에 일본이 속수무책이었던 것을 봤습니다. 거기서 여운형 선생은 일본의 패망을 감지하는데요.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밑거름이 되는 조직입니다.

 

 

1945년 8월 14일 여운형 선생에게 조선 총독부 서열 2위 엔도 류사쿠가 사람을 보내 접촉을 합니다. 할 얘기가 있으니 내일 보자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1945년 8월 15일 여운형 선생과 엔도 류사쿠가 만나는데요. 아직 일본 황제가 항복 선언을 하기 전입니다.

 

이때 엔도 류사쿠가 여운형 선생에게 한 말은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날 터이니 치안을 대신 맡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이 조선 땅에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땅에는 일본군인 32만 명 정도가 있었는데요. 무정부 상태가 되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일본도 장담을 못 해 자신들의 안위를 도모하고자 여운형 선생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일본이 여운형 선생을 선택한 이유는 여운형 선생이 당시 조선 정치인 중 제일 인기가 많았고, 조직도 갖추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또 북쪽에서는 소련이 남하하는 상황이었는데요. 소련을 다뤄줄 수 있는 것도 체크했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고민 끝에 알았다 하고 협상 조건을 내겁니다. 내용은 아래입니다.

1. 정치범, 경제범을 즉시 석방

2. 경성의 식량 3개월 치 확보

3. 치안 유지와 건설 사업에 간섭하지 말 것

4. 학생 청년의 훈련과 조직에 간섭하지 말 것

5. 조선의 노동자들에게 괴로움을 주지 말 것

당시는 식량을 배급해 줬는데요. 3개월만 있으면 추수를 하는 시즌이라 일단 식량 3개월 치를 요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1945년 8월 15일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합니다. 이름을 조선이라고 지은 이유는 대한제국은 일본에 패망했다는 이미지가 있어서 원래 우리나라를 뜻하는 조선이라고 이름으로 지은 것입니다.

 

건국 준비는 나라를 세울 준비를 한다는 의미입니다.

 

초기에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인기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국민이 위원회 사람들에게 밥도 그냥 주고, 꿀물도 주고 하는 등 애정을 받았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1945년 8월 16일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가 정치범이나 독립운동가들을 모두 석방합니다. 서울에서만 1,100명 ~ 10,000여 명의 수감자가 석방되었습니다.

 

오후 3시에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 부위원장인 안재홍이 라디오 방송을 하여 해방 소식을 전국에 알립니다.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태극기를 들고 밖으로 나와서 행진하는 등 광복 기쁨을 누린 것은 1945년 8월 17일부터입니다.

 

 

위의 사진은 해방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 모습입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3주일 만에 북한까지 포함해서 210개의 지부가 만들어집니다.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자주적인 정부 수립의 중심 세력이 됩니다.

 

일본 총독부는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가 치안 유지나 할 줄 알았는데 국가 건립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위협을 느껴 잘못되게 하고자 미국에 조선 건국 위원회가 소련하고 연결되었다는 내용의 잘못된 정보를 보냅니다. 그래서 처음에 미국이 한국 땅에 왔을 때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안 좋게 보았습니다.

 

미국 국무부나 OSS에는 한반도에 대한 옳은 정보가 있었는데요. 내부 정보로만 있었고 한반도에 주둔 예정인 제24군단은 조선에 대한 정보가 일본에서 받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미 군대가 조선에 처음 오고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홀대 했습니다.

해방 직후 여운형은 가장 많은 테러를 당한 사람입니다. 45년 8월부터 47년 7월까지 12차례 이상의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양평에 가서 요양 중이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서 인민공화국으로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여운형의 판단은 조선인민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순리이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인민공화국은 국민에게 외면을 받았습니다.

 

미군은 1945년 9월 8일 인천항으로 들어오는데요. 미군은 일본을 통해 건준에 대해 안 좋은 선입관을 가진 상태입니다. 건준을 처음 만났을 때 냉랭한 상태였습니다. 미군은 여운형을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공산주의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를 해제합니다.

 

이상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일본의 집착, 집요함은 정말 무서울 정도지요. 이런 일본의 특성을 잘 알아둡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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