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귀국 행렬에 대해 알아봅시다

해방 이후 귀국 행렬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이번 이야기에는 중고교 국사 교과서에는 잘 없는 이야기인데요. 해방 이후 귀국행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는 글이 되겠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해방이 왔는데요. 해방 직후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해방 이후 귀국한 사람의 숫자는 250만 정도입니다. 현재 대구광역시 인구가 236만 명인데요. 대구광역시 인구 정도 되는 숫자가 한국으로 귀국한 것입니다.

 

 

1937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이 전쟁에 고전하는 통에 한국인들도 강제동원을 해서 군인으로 활용하거나, 노동력으로 활용합니다. 그때 해외로 나가서 노동한 조선인 인구가 수백만 명입니다.

 

해외에 나간 조선 노동자는 임금을 안 주거나 굉장히 저렴해서 값싼 노동력으로 많이 이용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사망한 조선인도 약 4만 명 정도입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군수 공장이 많아서 거기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렸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에서 돌아오신 분들은 자발적으로 돌아오신 분들이고요. 중국에서 돌아온 분들은 강제성이 있었습니다. 중국에 주둔 중인 미군 보고서를 보면 조선인들이 중국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처럼 사람들이 도둑질도 하고, 마약밀매도 하면서 중국 사회를 흔들며 살았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이 조선인들이 해방 이후 귀국할 때 탔던 리버티 선입니다. 군함을 개조해서 귀환과 송환을 담당한 배인데요. 저 배 한 척의 정원은 3,500여 명인데요. 거기에 한 번에 9,000명도 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이 배에서 내리는 모습인데요. 사람들이 맨발입니다. 당시는 생활고 때문에 저렇게 맨발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귀국선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 가기도 어려웠고, 밥을 먹기도 힘들었습니다. 이틀 동안 갑판 위에서 추위에 떨며 참으며 배를 타야 했습니다.

 

 

위 사진은 미군이 조선인에게 DDT를 쏘는 장면입니다. DDT는 널리 알려진 살충제입니다. 미군이 당시 방역이나 위생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전염병의 방지는 통치 요소 중 중요한 것입니다.

 

해방 직전까지 조선인 800만여 명이 나갔는데요. 다 죽거나, 교포가 되고 들어온 사람 수는 250만 명 정도입니다.

 

1945년 8월 22일 해방 이후 처음으로 조선인들을 태우고 한국 땅으로 출발한 우키시마호가 있는데요. 이 배가 운항 중 폭발 사고가 나 수장되었습니다. 타고 있던 많은 조선인이 죽었는데요. 운항할 때도 예정도 노선으로 안 가고 다른 길로 갔다고 합니다. 이것에 대한 조사는 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미군의 통제하에 조선 땅에 있던 일본인도 본국으로 돌아갔는데요. 일본인 한 명당 일본에 가지고 갈 수 있던 돈은 1,000엔(당시 일본에서 2~3달 월급 정도)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짐도 자기가 들 수 있을 정도의 짐만 가지고 본국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이상 해방 이후 귀국행렬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식민지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인 것에 감사하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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