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통치 오보사건 에 대해 알아봅시다

신탁통치 오보사건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45년 12월 31일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서울 인구의 1/4에 달하는 30만 명 인원이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시위를 합니다. 이 시위를 촉발한 것은 1945년 12월 27일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때문인데요. 신문에서 게재한 이 기사의 내용은 모스크바 3상 회의(미국, 소련, 영국)의 결과인데요. 미국은 한국의 즉시 독립을 지지했지만,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기사가 바로 가짜뉴스입니다. 굉장히 민감하고 중대한 사항을 오보한 것입니다.

 

 

위의 분이 송진우 한국민주당 수석총무입니다.

막 독립한 나라한테 신탁통치는 또 다른 이름의 식민지배입니다. 그래서 당시로써는 반대여론이 들끓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반대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송진우 당시 한국민주당 수석총무가 아래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여기 누구라도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결정된 의정서의 원본을 제대로 읽어본 분이 있습니까? 저도 반탁의 입장이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까지 반대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얘기를 듣고 반탁을 주장하는 무리에서 송진우는 찬탁세력으로 간주하고 밤에 송진우의 집에 침입하여 총으로 송진우를 죽였습니다. 이 정도로 신탁통치 찬반사건은 굉장히 민감하고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은 당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찬탁세력과 반탁 세력이 갈라져서 서로 죽이고, 다이너마이트를 폭파하면서까지 자기들이 맞다 주장을 했습니다.

 

보통 우파에서 반탁운동을 했고요. 좌파에서는 찬탁운동을 했습니다.

 

신탁통치 갈등이 심했을 때 단순히 자신과 신탁통치 의견이 달라 죽인 것도 있지만, 이것을 빌미로 정적을 제거하는 활동도 일어납니다.

 

아래는 신탁통치 오보사건으로 일어난 테러입니다.

1946년 1월 2일 동아일보 테러

1월 6일 서울신문, 중앙신문 테러

1월 7일 대동일보 테러

1월 8일 자유 신문사 다이너마이트 투척

위에서 말한 대로 위의 동아일보 신탁통치 기사는 오보입니다. 가짜뉴스인데요. 여기서부터는 모스크바 3상 회담의 진실한 내용을 적겠습니다.

 

1945년 12월 27일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했다,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동아일보 가짜뉴스)

하지만 실제로 신탁통치를 제안한 쪽은 미국이고요. 반대한 쪽은 소련입니다.

 

모스크바 3사 회담 결과는 아래입니다.

O 통일된 임시 민주 정부 수립

O 이를 위해 미소 공동위원회 구성

O 미소 공동위원회, 임시 정부와 상의해 최장 5년 신탁통치 논의

O 2주 이내에 미소 군사령관 회담

 

1번째 항목과 3번째 항목이 중요사항입니다. 신탁통치가 최장 5년이라면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에서 격렬하게 죽이고 테러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날짜도 살펴봐야 하는데요. 1945년 모스크바 3상 회담 결과 공식 발표 시간은 모스크바 시각으로 12월 28일 정오입니다. 한국시각으로 12월 28일 오후 6시입니다. 주한미군 사령부도 결과를 12월 29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신탁통치 오보를 한 날짜는 12월 27일입니다. 누군가 미리 정보를 흘린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그게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애치슨 라인이라고 1945년 당시 미국의 아시아 방위선을 나타낸 지도입니다. 한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김일성도 저거 보고 6·25전쟁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일어날 당시 미국이나 소련이나 한국에 신경을 많이 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신탁통치를 하면 모든 것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분만 통치에 참여하면 되니 적은 노력으로 많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미국은 신탁통치를 원했던 것이고요. 실제로 1946년만 되도 주한미군은 다른데에 투입하라는 의견이 속속 나올 정도로 한국은 미국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소련도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해진 소련 서부지역에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좌익성향의 인물들이 많아 가만히 놔둬도 친소련화될것이라 생각되었기에 한국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으로 가장 이득을 본 인물은 친일파입니다. 당시 갓 독립을 하여 민족반역자들을 처벌해야 했는데요. 신탁통치 오보사건이 일어나면서 찬탁이냐 반탁이냐로 갈라지고, 이것이 또 우익이냐 좌익이냐로 연결되어 갈라지면서 심각하게 싸운 통에 중요한 것이 친일했냐 독립운동을 했냐가 아니라 우익이냐 좌익이냐가 중요하게 프레임이 짜졌습니다. 그래서 이 틈에 친일파들이 우익활동에 대거 참여하면서 애국자가 되는 사회모순이 생겼습니다. 미국도 나라를 빨리 안정화하기 위해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을 또 일하게 하였는데요. 이 때문에도 친일파 처단을 못 했습니다.

이상 신탁통치 오보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사람은 이성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감정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개인의 삶이 아닌 큰일을 하는 사람은 행동할 때 이성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여야 맞게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신탁통치 오보사건도 감성적으로 생각하여 잘못되게 알면서 무조건 반탁을 주장했기에 일이 어그러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점을 알고 행동은 이성적으로 하는 습관을 들입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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