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 시대 한국의 지도자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미군정 시대 한국의 지도자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미국은 한국에서 미군정을 하면서 자신과 손잡고 함께 일할 차기 한국 지도자들을 키워야 했습니다. 그 후보자는 김규식, 여운형, 김구, 이승만이었습니다. 그것 관련 미군정 시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위의 사진은 왼쪽부터 김구, 이승만, 여운형, 김규식입니다.

미군정이 처음에 주목한 인물은 이승만입니다. 이승만은 양녕대군(세종대왕 형) 후손이고요. 미국에서 명문인 프린스턴대학교를 나왔습니다. 그래서 미국 엘리트 중에 인맥도 많고요. 반공 사상이 투철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왼쪽 사상을 가진 인물들이 인기가 많았던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인물로 이승만이 낙점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단체들이나 협회는 10만 원 20만 원 이렇게 지원할 때 이승만에게는 1,000만 원을 지원할 정도로 유력한 차기 한국 지도자 후보였습니다.

 

 

반면 미군정이 김구는 스튜에 들어가는 소금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필요한 존재이지만 메인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 친일파와 손을 잡고 독재를 한 이승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당시 이승만은 정치 공학의 달인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은 민주주의 나라를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은 미국에 있으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겪어서 정치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지도자들은 하지 않는 지방 순회 연설을 하며 지지도를 높였고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유행어까지 만들며 많은 지지도를 올렸습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지지율이 중요한 것을 알았던 거였습니다.

 

처음엔 미군정이 이승만을 좋겠봤지만 점점 더 미군정은 이승만을 안 좋게 보기 시작합니다. 너무 극단적이고 과대망상이라는 것입니다. 미군정의 대장인 하지 중장이 이승만에게 정신과 진료를 봐보라고 말할 정도로 이승만과 어긋났습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미국 워싱턴으로 건너가 자기 인맥을 동원하여 하지 중장은 공산주의자라며 모함을 하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효과가 없었습니다.

 

미군정은 미소 공동위원회에서 남북 공동의 정부를 만들기 위해 소련도 납득할 만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인물이 김규식과 여운형입니다. 김규식을 메인 지도자로 하고 여운형을 바쳐주는 사람으로 등용하려고 했습니다.

 

여운형은 중도좌파인데요. 그래도 좌파라 미국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지도자 후보에서 떨어트리기 위해 일본에 여운형이 친일한 행위를 조사하라고 했는데요. 일본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운형은 확실한 한국 애국자로 보고가 올라옵니다.

 

그렇게 김규식과 여운형 투톱 체제로 한국 지도자를 만들려고 할 당시 여운형이 암살을 당합니다. 당시 여운형은 12번의 암살 시도를 당했는데요. 12번째에 총을 맞아 사망하였습니다. 여운형을 죽인 범인은 극우파 청년인 한지근인데요. 그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여운형이 죽고 김규식 혼자 지도자로 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김규식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학자 스타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할 때도 상해나 북경에서 해외에 나오는 한국 청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학자 같은 일해서 단독 지도자로 세우기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위의 사진이 장덕수 얼굴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나온 인물이 한국민주당 정치부장을 역임한 장덕수입니다. (1894년~1947년) 장덕수는 와세다대학교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친일경력이 있습니다. 인맥도 좋고요.

 

당시 미군정이 구상한 헌법 초안에는 의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힘은 의회에서 가지고, 대통령은 실권은 없으면서 얼굴마담 역할만 하게 체계를 잡으려고 했습니다. 거기에 장덕수를 의회의 총리직에 앉히고, 대통령은 이승만 같은 사람이 하게 해서 얼굴마담이나 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근데 이 장덕수도 집에서 경찰에서 의해 암살을 당합니다.

 

그러다 1948년 5월 10일 38선 이남에서만 첫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이루어집니다. 이승만은 단독으로 나가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데요. 극우파 청년들이 이승만 경쟁자를 방해해서 선거에 못 나오게 해 동대문구 갑에서는 이승만 단독 후보로 당선되었습니다.

 

이상 미군정 시대 한국의 지도자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셨던 분들이 암살을 많이 당하셔서 안타깝습니다. 그런 반면 이승만은 거짓말을 자주 하며 국민의 지지도를 올리는 행동도 많이 했는데요. 지도자가 하는 말이라도 다 믿지 말고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아보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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