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위험했던 순간을 알아봅시다

인천상륙작전 위험했던 순간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한 달 만에 낙동강 전선이 형성됩니다. 물론 우리나라 군만으로는 북한군을 못 막았고요. 미군이나 연합군이 들어와서 그나마 낙동강 전선이라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위의 그림이 낙동강 전선의 모습입니다.

원래 북한은 6.25전쟁을 일으켜도 미군이 참전 안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6.25전쟁을 소련이 배후에 있는 전쟁으로 봤습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반드시 6.25전쟁에 참가해야 했습니다.

 

 

당시 낙동강 상공에는 항상 2대의 미군 전투기가 떠 있었고, 일본에서는 15분 간격으로 미 전투기가 출격했습니다.

 

 

위의 그림은 당시 북한군과 유엔군 병력 비교를 보여주는 표인데요. 낙동강 전선을 유지하며 유엔군은 선전하고 있었습니다.

 

1950년 9월 11일 일본과 부산에서 국군과 유엔군 70,000여 명을 태운 261척의 함정이 출항합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인천 앞바다입니다.

 

1950년 9월 15일 함포사격을 시작으로 상륙작전을 수행합니다. 유엔군은 한 시간 반 만에 월미도를 점령합니다. 맥아더 장군이 계획한 대로 인천상륙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유엔군은 작전 시작하고 만 하루 만에 인천을 점령하고 다음 목표인 서울을 향해 전진합니다.

 

처음엔 국방부는 인천상륙작전을 반대하는데요.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큽니다. 그래서 만약에 물이 빠졌을 때 상륙작전을 하면 수 km의 갯벌을 지상군이 걸어가야 할 상황이 생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기관총 등에 사살되기 딱 좋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대했는데요.

 

 

인천이 최대로 물이 육지로 많이 들어오는 만조 시기가 한 달 한 번 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날 인천상륙작전을 한 것입니다. 함선이 들어가기에 수로도 좁아서 정해진 시간 2시간 안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작전 성공확률이 1/5000 정도라고 하는데요. 그걸 성공시킨 것입니다.

 

유엔군은 미리 정찰도 하고요. 근처 주민들의 도움으로 북한군의 포가 어디 있는지 기뢰는 어디 있는지 등 미리 사전 정보를 다 수집하고 작전을 수행한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인천상륙작전의 위험했던 순간을 살펴보겠습니다.

중국의 마오쩌둥은 유엔군이 상륙작전을 할 것이란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상륙작전할 곳이 인천이란 것도 알았는데요. 그걸 김일성에게 이야기 해줬지만, 김일성은 건성으로 듣고 낙동강 전선을 몰아칠 생각만 해서 다행히 인천 쪽에 방어기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미군은 2차 세계대전 때 상륙작전만 60번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이 보기에 지금이 미국에서 상륙작전을 할 시기로 보였습니다. 상륙작전 지역은 군산이나 평택 등 몇 개의 후보지가 있었는데요. 맥아더 장군의 기질상 인천으로 상륙할 것이란 것까지 예측했습니다. 당연히 김일성한테 이런 사실을 찔러줬는데요. 김일성의 자질이 부족하여 이런 사실을 간과한 게 다행이었습니다.

 

 

위의 지도에 표시된 지역이 상륙작전을 할 만한 후보지였습니다. 유엔군도 그렇게 생각했고, 중국과 소련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스탈린도 인천상륙작전을 할 것이란 것을 예측했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에게 서울에 전력을 보강해놓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낙동강 전선에서 4개 사단을 차출하여 서울 방어에 투입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김일성은 서울에 1개의 전차여단과 1개 연대 병력만 보충합니다. 김일성은 당시 8월 15일까지 부산을 점령해야 한다는 것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마오쩌둥이나 스탈린 말을 무시했는데요. 다행히 그 결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뒤집는 결과를 국군과 유엔군이 얻습니다.

 

이상 인천상륙작전 위험했던 순간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김일성이 머리가 나빠서 불행 중 다행이었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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