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깡패 자유당 시절을 알아봅시다

정치깡패 자유당 시절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깡패란 말의 어원은 Gang + 패거리가 합쳐져서 깡패라는 단어가 나왔다고 합니다. 용어가 한국전쟁 때부터 사용되었답니다.

 

 

위의 사진은 1961년 5월 21일 정치깡패들의 참회 행진입니다. 맨 앞에 있는 인물이 정치깡패의 대명사 이정재입니다. 이정재는 나중에 사형에 당합니다.

 

 

권력자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수단을 동원하는데요. 그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수단이 바로 불법 폭력입니다. 불법 폭력 하면 정치깡패를 빠트릴 수 없습니다.

 

이정재의 경우는 전국씨름대회를 3회 우승할 정도로 힘이 장사였던 사람입니다.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장사를 했는데요. 거기 동대문 시장 깡패들과 마찰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정재가 깡패들을 다 때려눕힙니다. 그렇게 크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동대문 시장 파의 보스로 등극합니다. 50년대 서울 제1의 깡패 하면 바로 이정재였습니다.

 

이정재의 경우는 살인이나 살인 교사를 하더라도 뒤에 이기붕이라는 제2의 권력자라는 빽이 있으므로 경찰서에서 며칠이면 그냥 풀려났습니다.

 

 

위의 사진이 이기붕 모습입니다. 옆에 여자는 이기붕 부인인 박마리아로 이승만 대통령 부인하고 아주 친했다고 합니다.

이기붕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 이어 제2의 권력자였습니다. 이런 이기붕과 이정재가 결탁한 것입니다.

 

이기붕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키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승만은 대통령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편으로 정치 능력, 민심을 고려하기보다는 자기에게 충성하는 이기붕을 2인자로 선택한 것입니다.

 

이기붕 같은 경우는 제2의 권력자가 되었을 때 내가 이것을 어떻게 유지하겠는가 방법을 생각할 때 지금 같은 경우는 싱크탱크를 만든다거나 조직을 더 키운다거나 하겠지만 당시에 정치깡패를 고용해 공포정치를 하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정재의 경우도 권력 중심에 있던 인물이 손을 내민 것이니까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7시 아침마다 이정재가 이기붕한테 가서 문안 인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기붕은 이정재에게 자유당 감찰부 차장이라는 직위를 줍니다. 어떤 조직이나 감찰부 감사부는 제일 무서운 조직입니다. 거기서 모든 정보를 다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이용해 통제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정말 믿는 사람이 아니면 맡기질 않습니다. 이기붕은 이정재를 거기에 앉혀 다른 정치인들을 견제한 것입니다.

 

정치깡패 이정재의 주요 정치 폭력 사건들은 아래입니다.

O 이갑성의 보디가드 테러

O 자유당 서울시당 위원장 선출장에서 무력시위

O 야당계 후보자 등록 서류 탈취 및 선거운동원 테러

O 자유당 총무부장 임홍순 테러

O 사사오입 개헌안 통과 당시 국회 방청석에서 무력시위

O 자유당 창당 동지간담회 발기회 난입

O 민주당 윤보선 강연회 방해

O 진보당 서울시당 및 경기도당 결성대회 난입 테러

O 장충단 공원 야당 시국강연회 난입 테러

O 4.18 고려대생 습격

 

야당 탄압적인 일만 한 게 아니라 여당 쪽에서도 이기붕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을 했습니다.

 

자유당 당시 3개의 우익청년단이 활동했는데요. 우익청년단의 주요 임무는 좌우 합작운동을 방해하거나 좌익인사를 테러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한 민주청년동맹의 중심에는 김두한이 있었고요. 서북청년회에는 이북청년들이 대거 참여하였는데요. 이화룡과 시라소니가 중심에 있었습니다. 서북청년회는 가장 반공적인 성격이 강했고요. 4.3운동을 포함해 민중봉기가 있을 때 제일 선봉에서 서서 진압하는 조직이었습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청년단도 있었는데요. 그곳의 중심이 바로 이정재였습니다.

 

이 3개 조직은 전쟁 후 우익청년단 이름으로 통합합니다. 이승만은 우익청년단을 이용해 종신집권까지 이루려고 했습니다.

 

 

1957년 5월 장충단 공원에서 열린 반 자유당 시국강연회를 하는데요. 괴한들이 난동을 부립니다. 그 괴한들이 이정재 패거리였는데요.

 

 

위의 사진이 동아일보에 실립니다. 근데 사람들 얼굴이 다 잘 보이니까 아는 사람들이란 것을 안 것입니다. 이정재 일파인 것을 알았는데요. 그래서 정치깡패라는 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정치에 깡패를 이용한다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여론이 굉장히 악화가 됩니다.

 

그래서 처음엔 유지광만 구속하는데요. 그걸로 안 되어서 조직 계보를 공개합니다.

 

자유당 입장에서는 정치깡패들과 연루되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경찰을 압박해 흐지부지하게 사건이 진행되게 합니다.

 

정계에서 이정재를 함부로 못 건드리는 것을 이정재가 압니다. 이정재가 여태까지 해왔던 정치깡패로서의 활동을 공개하면 이기붕은 많이 곤란해질 것이란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이정재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려고 하는데요. 경기도 이천에 출마하려고 했습니다.

 

이정재는 이천 주민의 경조사에 필히 참석하고요. 자유당 이천군당 위원장에 취임하고, 환갑잔치를 개최하고, 면장들에게 자전거도 제공하면서 밑밥을 많이 뿌렸습니다.

 

그때 이기붕이 58년 선거에서 서대문구를 나가려고 했는데요 안될 것 같았습니다. 여촌야도라는 말이 유행했는데요. 농촌은 여당, 도시 지역은 야당에 투표하는 사회현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붕이 이천에 출마합니다.

 

이기붕은 그 외에도 이정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기붕은 원래 청년단을 1~2년 사용하다 해제시키고 다른 청년단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1~2년 되면 또 해제하고 다른 청년단을 만들어 사용하고요. 이정재 관련해서도 이 기회에 바꾸려고 했습니다.

 

이정재는 반발하는데요. 이기붕은 협조하지 않으면 니 조직을 없애버리겠다고 합니다.

 

이기붕은 이천 국회의원에 당선됩니다.

 

이기붕은 이정재에게 경찰 치안국장 자리를 제안하는데요. 이정재는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정재는 종로 폐가를 구입하고 거기서 야인생활을 합니다.

 

 

위의 사진이 임화수 모습입니다.

이기붕은 이정재의 빈자리에 임화수를 데려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 이후 정권이 무너지는데요. 그 후 5.16 군사 정변 이후 정권을 잡은 쪽이 사회정화 목적으로 정치깡패를 다 체포합니다. 이정재와 임화수도 그때 잡혀 사형을 당합니다.

 

이후에도 한국에서 정치깡패는 70년대~80년대에 다시 등장합니다. 야당 쪽에서 전당대회를 할 때 정치깡패들이 등장합니다.

 

이상 정치깡패 자유당 시절을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정치깡패의 마지막은 사형이라고 모래시계에서 본 거 같은데요. 올바르게 살아야지요. 불법을 저지르며 살면 오래 가기 힘듭니다. 잘 삽시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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