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 축구단 에 대해 알아봅시다

양지 축구단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67년 3월 양지 축구단이 창설됩니다. 이회택, 김호, 김정남, 이세연 등 당대 최고 선수들이 소속된 곳입니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에서 일한다.”는 중앙정보부의 보훈에서 이름을 딴 양지 축구단입니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이 주도해서 만들었습니다.

 

 

1960년대는 북한이 축구의 전성기 시절이었습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이겨 8강에 진출하기도 하고요. 8강전에서 3대5로 포르투갈에 지긴 했지만 3골이나 득점하기도 합니다.

 

 

이것에 경쟁심을 가지고 있던 중앙정보부는 클럽 차원에서 축구 실력을 높이기 위하여 양지 축구단을 창설한 것입니다. 보통 그 나라의 축구 국가대표단이 잘하려면 클럽 수준에서의 축구 실력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클럽 기준으로 축구단을 만든 것입니다.

 

한국은 북한에 질까 봐 1966년에는 월드컵에 아예 출전을 안 할 정도로 북한 축구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중앙정보부는 1951년 5·16쿠데타 직후에 만들어진 기관입니다. 국가 안보를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관련 사건을 조사, 조정, 감독하는 역할을 합니다. 북한과 관련된 공산주의를 막는 일을 한곳입니다. 현재 국정원의 전신입니다.

 

 

위의 사진이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입니다. 양지 축구단을 주도해서 만든 인물입니다.

김형욱은 1963년 7월 ~ 1969년 10월까지 최장수 중앙정보부장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대표 축구단을 만들면 23명 중 10명 이상이 양지 축구단 소속이었습니다. 대체복무로 양지 축구단에 들어올 수도 있고요. 당시 선수들 월급이 25,000원 정도였는데요. 이것은 국영기업 중견간부들의 월급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식사도 고기 위주로 잘 나왔고요. 당시 잔디 구장이 한국에 없었는데 딱 한군데 있던 곳이 중앙정보부의 자연 잔디 축구장이었습니다. 거기서 훈련을 했습니다. 당시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든 해외 전지훈련도 했습니다.

 

대신 중앙정보부에서 선수 한명 한명을 밀착 감시했습니다. 휴가를 나가면 시간 단위로 무엇을 하는지 감독이 다 알았다고 합니다.

 

양지 축구단은 해외 원정 평가단과의 성적이 26전 15승 3무 8패입니다. 굉장히 잘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양지 축구단이 주축이 된 한국 국가대표팀은 1967년 메르데카컵에서 우승합니다. 그리고 양지 축구단 자체는 1969년 아시아클럽 선수권에서 준우승합니다.

 

하지만 1970년 대에 들어서 남북관계가 대화하는 시기로 변하자 실미도 부대가 필요 없어져서 해산한 것처럼 양지 축구단도 해산합니다. 또 양지 축구단을 창설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도 1969년 10월 해임되어 축구단 해산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상 양지 축구단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축구는 보면 쫄깃쫄깃한데요. 2002년 같은 성과를 다시 얻으면 좋겠습니다. 축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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