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개통 하는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알아봅시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하는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처음 구상한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4년 차관을 빌리기 위해 서독을 방문했는데요. 거기서 아우토반을 150km 이상 달리며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달리는 중간중간 내려서 얼굴을 땅 가까이 부쳐서 보는 등 아우토반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합니다.

 

 

위의 그림은 박정희 대통령 노트에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그린 고속도로 그림입니다. 저런 그림이 몇 장 있는데요. 연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1967년부터입니다. 3년 정도 고속도로에 대해 생각하고 연구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 설계 전에 직접 그린 고속도로 그림도 있습니다. 매우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1967년에 경부고속도로 TF팀을 만드는데요. 사무실 위치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이었습니다. 육군 장교 3명과 건설부 직원 1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는 군인들이 지식인층이었고, 지도도 볼 줄 알았기 때문에 군인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TF팀이 제일 먼저 할 일은 축적 5만분의 1 전국 지도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같이 매우 큰 지도인데요. (60m², 18평) 이런 것이 당시 한국에 없어서 지도를 만드는 일부터 하고 그다음 노선을 정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원칙은 아래입니다.

1. 서울 – 부산 간 소요시간 5시간 내

2. 3년 내 완성(선거가 있어서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위의 선이 당시 경부고속도로 노선이었습니다. 제3한강교(한남대교)를 기점으로 천안, 대전, 구미, 대구, 경주 부산을 잇는 도로입니다. 총연장 428km입니다.

 

당시 워낙 큰 사업이었나 보니 사람들 말이 많았고 반대도 많았는데요. 반대 이유는 당시 치수 사업이 더 급하다는 주장이 있었고요. 왜 경부선이냐는 것입니다.

 

당시 철도가 서울과 부산을 잇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고속도로까지 왜 또 부산하고 잇는지 하는 반대 논리였습니다. 이일을 계기로 지역감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부터 지역감정이 생긴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을 추진한 이유는 산업단지가 경상도 남부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산의 항구도 이어지고요.

 

이때 현대에서 전체 구간의 40%를 담당해 박정희 대통령의 눈에 들어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입지를 다졌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하는 데까지는 총건설비용 330억에 결론을 냈습니다. 건설비용은 휘발윳값 인상(2배 인상)같이 세금을 인상했고요. 통행세와 도로 공채를 발행하고 한일협정 때 받은 자금 27억 원으로 건설비용을 충당했습니다.

 

국민의 땅도 매입해야 했는데요. 국민이 협조를 잘 해줘서 매우 싼값에 땅을 살 수 있었습니다.

 

1968년 2월 1일부터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위한 건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합니다. 군인 공병대를 많이 활용했습니다.

 

 

위의 그래프는 경부고속도로 1일 교통량입니다. 1970년 당시에는 차가 별로 안 다녔는데요. 폭발적으로 이용량이 많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를 내다본 사업이었던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 부산 간 5시간이면 이동이 가능해졌습니다.

 

일일생활권이 되면서 같은 문화권으로 인식되어 대한민국 사람들이 같이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된 데에 한몫했습니다.

 

 

단점으로는 위의 그림처럼 지역감정이 저 때부터 생긴 것입니다.

 

이상 경부고속도로 개통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잘한 건 잘했다고 해야지요. 경부고속도로는 성공한 국가사업입니다. 아쉬운 점은 바로 전라도까지 잇는 고속도로도 개통을 시켜야 했었는데 그게 아쉽습니다. 국가 발전을 위해 노력 주신 아버님 할아버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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