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개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한국 핵개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한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핵개발을 추진했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방해로 실패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핵미사일을 많은 나라가 갖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너도나도 핵무기가 있으면 어디선가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분이 이휘소 박사님입니다.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보면 이휘소 박사가 한국 핵개발을 기술적으로 주도한 것처럼 묘사되어 있는데요. 이휘소 박사는 한국 과학자 중 노벨상에 제일 근접했던 분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휘소 박사는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를 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남겨진 기록을 보면 한국에서 격려 삼아 대학원생들과 만나는 일조차 박정희 대통령 정권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일까 봐 하기 꺼려진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1970년대 미국은 미군 1개 사단을 실제로 한국에서 철수하기도 하고요. 미국이 자기네 나라만 잘사는 노선으로 변경합니다. 그래서 한국은 북한에서 쳐들어올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었는데요. 그 와중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핵개발을 주도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표면적으로는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기술들을 해외에 배울 수 있기 위하여 돌아다녔는데요. 프랑스도 가고 캐나다도 가서 원자력 발전 기술들을 전수 받을 수 있거나 사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배우려고 노력했던 기술들은 원자력 발전을 하는 데 있어서 쓸데없이 비싼 기술들도 있습니다.

 

위의 사진이 캐나다의 NRX 중수 조절식 원자로입니다.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 못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 나라에서 원자력 발전을 하는 거 치고 터무니없게 비싼 기술을 전수받으려고 했습니다. 그 기술은 원자력 발전하는 데는 비싼 기술(캐나다의 NRX 중수 조절식 원자로 기술)이지만, 핵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기술이었습니다. 이런 사항들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국 핵개발을 주도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항들이 미국에 감지되어 미국에 의해 기술이전을 못 하게 되었습니다. 또 CIA 한국지부에 핵물리학자 출신 CIA 직원을 상주 시킬 정도로 미국은 한국 핵개발을 못하게 모니터링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반대로 핵개발을 못했지만, 그것을 지렛대 삼아 미국의 원조나 한미상호방위조약 등 미국의 도움은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 핵개발 안 할 테니까 안보적으로 도와달라고 하고 그런 것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핵을 목적지로 나를 수 있는 지대지 미사일 기술도 개발하여 당시 200km(서울에서 평양 거리) 사거리의 탄도 미사일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이 미사일도 당시에는 미국이 사거리나 탄두 중량에 제한을 뒀는데요. 요즘에 이게 풀려서 우주로 갈 수 있는 로켓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상 한국 핵개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한국은 현재에도 핵무기가 없는 게 낫습니다. 그래야 북한과 서로 실수로 핵무기를 발사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핵무기 대신 다른 국방력을 강화하고 외국의 다른 나라들에 많은 나의 편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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