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 전투 임진왜란 때 이긴 이유를 알아봅시다

평양성 전투 임진왜란 때 이긴 이유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합니다. 일본군은 당시 신무기였던 조총을 주력무기로 해서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20일 만에 치고 올라옵니다. 선조는 북쪽으로 도망가는데요. 그래서 일본도 북쪽으로 더 진격해 들어갑니다. 그 와중에 평양성 전투가 있었던 것입니다.

 

 

위의 모형은 평양성 모습입니다.

평양성 전투는 임진왜란 때 총 4번 있었습니다.

1592년 6월에 첫 전투가 있었는데요. 이때 조선군이 져서 일본군이 평양성을 점령합니다.

그 후 1592년 7월에 명의 조승훈이 평양성을 한번 공격했지만 탈환은 못 했고요. 1592년 8월에 조선의 김명현이 다시 한번 평양성을 공격하지만 역시 탈환하지는 못합니다. 여기서 이야기할 것은 바로 4번째 평양성 전투인 1593년 1월에 있었던 전투인데요. 이때 조선이 평양성을 탈환합니다. 여기서는 이긴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평양성 전투 임진왜란 때 이긴 이유 1. 조총보다 사거리와 파괴력이 강한 화포사용

명군의 무기인 불랑기포는 서양식 청동제 화포인데요. 이것의 유효 사정거리는 500~1,000m입니다. 이에 반해 왜군의 주력무기는 조총인데요. 유럽에서 전래한 화승총으로 유효 사정거리는 150m입니다.

 

위의 빨간색 선이 당시 평양성을 3방향에서 공격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명나라 화포가 사정거리가 더 기니까 멀리서 쏴 성문을 부수었습니다. 성문을 부순 다음 명군과 조선군이 성내로 진입하여 왜군을 제압했습니다. 당시 조명연합군은 50,000명이었고 일본군은 15,000명이었습니다. 숫자가 3배 차이가 나니 당연히 육박전에서 조명연합군이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평양성 전투 임진왜란 때 이긴 이유 2. 날씨

당시 1월이라 상당히 추웠습니다. 최저 기온 영하 16도, 최고 기온 영하 1도 정도 됐다고 합니다. 일본사람들은 그런 추위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사람들이라 대비도 안 했고, 적응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동상에 걸려서 발을 자르는 게 부지기수였습니다.

 

반면 조선군과 명군은 그런 추위를 많이 겪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았습니다. 이렇게 조명 군은 왜군에 비해 날씨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평양성 전투 임진왜란 때 이긴 이유 3. 보급

병사들도 사람인지라 뭔가 먹어야 계속 활동할 수 있는데요. 당시 일본군 보급이 안 좋았습니다. 서해안 바다로 보급하는 것은 이순신 장군 때문에 막혔고요. 육지를 이용한 보급은 의병들 때문에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성 밖으로 나가야 약탈을 해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지만, 조명군 때문에 성 밖으로 자유롭게 출입하는 것도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위의 색깔 선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보급로였는데요. 의병들이 게릴라 전술을 하여 보급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 “부산에서 한양까지는 300명 미만의 병력으로 지날 수 없고, 한양에서 평양까지는 500명 미만으로 이동할 수 없다.”

 

평양성 전투 임진왜란 때 이긴 이유 4. 조선에서 리더의 등장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의 진정한 리더는 광해군이었습니다. 당시 선조가 왕이기 했으나 도망갈 생각만 했습니다. 그래서 신하들과 마찰이 자주 있자 광해군에게 왕의 권력을 나눠주고 선조 자신은 조선과 중국 경계선쯤으로 가서 피신해 있고 광해군에게 임진왜란 컨트롤 타워 노릇을 하게 하는데요. 광해군이 굉장히 잘했습니다.

 

아래는 광해군의 컨트롤 타워 활동 사항입니다.

O 의병에게 격문을 보내 연합작전 지시

O 군공을 세운 이들에게 벼슬하사(노비라도 벼슬을 줌)

O 겨울 전투 대비해 옷감 보급

O 수렴파견 등 인사권 행사

 

전투하는 것은 광해군보다 현장에 있는 병사들이 더 잘 압니다. 그래서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는 명령을 안 하고요. 전체적인 흐름에 대해서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고요. 보급물자를 아쉬운 대로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당시 광해군은 18세였습니다. 어린데도 큰일을 한 것입니다.

 

이상 평양성 전투 임진왜란 때 이긴 이유를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국난이 왔을 때는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민초 개개인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리더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국난을 극복하는 대한민국이 되면 좋겠습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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