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26사태 박정희가 서거한 날에 대해 알아봅시다

10 26사태 박정희가 서거한 날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청와대 인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를 권총으로 쏴 죽입니다. 안가라는 것은 safe house를 뜻하는 말로 한국어로 안전가옥이라 합니다. 안전가옥은 신변 보호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보안설비를 해 둔 주거시설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안가가 몇 개 있었는데요. 그것의 존재 사실은 관련자 몇 명밖에 모를 정도로 극비사항이었습니다. 그중 궁정동 안가는 커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제일 애용하던 곳이었습니다.

 

 

위의 사진이 11시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정희, 김재규, 김계원, 차지철입니다.

궁정동 안가에서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비서실장 4명이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권력 1~4위가 모인 자리입니다. 또 가수 심수봉과 모델 신재순도 참석합니다.

 

 

김계원 비서실장의 증언에 따르면 그날따라 자기가 밝은 주제로 이야기하려 해도 자꾸 대화 주제가 부마항쟁이나 김영삼 전 대통령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정말 정말 싫어했습니다. 또 부마항쟁(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며 부산 마산을 중심으로 벌어진 시위사건 1979. 10)도 싫어했는데요. 그런 주제가 나오면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잘 좀 하라는 투의 말이 자꾸 나왔습니다.

 

김재규와 차지철은 평소에도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 일단 성향이 달랐습니다. 김재규는 정치를 하면서 타협도 하고, 협상도 하면서 부드럽게 나라를 이끌고 싶었는데, 차지철은 마음에 안 들면 탱크로 밀어 버려 하던가, 캄보디아도 200만 명 죽였는데 우리라고 못 할까 하는 말을 하는 등 좀 무식한 사고방식에서 성향이 달랐습니다.

 

박정희 정치 스타일이 2인자끼리 경쟁을 시키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재규와 차지철을 알게 모르게 경쟁을 시켰는데 거기서 박정희가 차지철에게 기울어진 상황이었습니다.

 

나이도 김재규가 차지철보다 8살이 많고, 계급도 김재규는 쓰리스타까지 갔는데, 차지철은 중령까지만 하고 올라와서, 박정희 대통령 쿠데타 할 때 같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승승장구해 경호실장까지 한 것입니다. 김재규는 또 육사 2기로 박정희 대통령과 동기이지만, 차지철은 포병 간부 시험을 봐서 합격해 간부가 된 케이스입니다.

 

이런 데 경호를 한다는 이유로 김재규가 마음대로 박정희를 만날 수 없게 차지철이 중간에서 가로막고요. 문서만 제출하는 것도 종이에 독극물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역시 차지철이 중간에서 통제해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정치공작 작전을 차지철이 짠 다음 국정원에 시켜서 하라 그러고 잘 안 되면 국정원 탓으로 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셋이 모여 회의를 하면 박정희가 차지철에게 기울어져 있는 상황이라 김재규는 많이 화가 나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입니다.

술 마실 때 김재규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에게 전화를 걸어 궁정동에서 같이 저녁을 먹자고 오라 그럽니다.

 

정승화가 오자 김재규는 대통령과 약속이 잡혀서 그러는데 끝나고 갈 테니까 옆 건물에 가 있으라고 합니다.

 

김재규는 자기가 거사를 했을 때 군대를 장악하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미리 정승화를 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김재규 의전과장인 박선호(왼쪽)와 수행비서 박흥주(오른쪽)입니다.

김재규는 정승화를 대기한 상태에서 2층 집무실로 가 권총을 꺼내 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의전과장이던 박선호와 수행비서 박흥주에게 “오늘 저녁 해치울 테니 너희들은 방안에서 총소리가 나면 (...) 나를 도와 경호원들을 처치하라”라고 했습니다.

 

 

1979년 10월 6일 오후 7시 40분 대화를 이어나가던 김재규가 갑자기 권총을 뽑아 들고, 차지철을 쏩니다. 이때 차지철의 팔에 맞습니다. 그 후 박정희의 가슴에 쏩니다. 화장실로 도망가던 차지철을 쫓아서 다시 총을 쏘려고 하는데 총알이 총에 걸립니다.

 

 

위의 총이 김재규가 사용한 월터 PPK라는 권총인데요. 되게 작고, 가벼워 스파이들이 암살할 때 많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 두발의 총소리를 신호로 김재규 부하들도 밖에서 청와대 경호원들을 저격합니다. 그래서 경호원 4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습니다.

 

김재규는 박선호로부터 새총을 가져와 차지철의 복부를 쏘고, 박정희의 머리에 확인 사살을 합니다. 김계원은 건들지 않습니다.

 

김재규가 나간 다음에 김계원이 박정희 대통령을 병원으로 옮깁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숨진 상태였습니다.

 

여기까지 10 26사태가 5분 사이에 벌어진 일입니다.

 

김재규는 피가 묻은 옷을 입고 그대로 옆 건물의 정승화를 불러 같이 차를 탑니다. 처음엔 남산으로 가려고 했는데요. 정승화가 계엄령 선포하자고 설득해서 육군본부로 향합니다.

 

10 26사태가 처음 전해졌을 때는 고위층 대부분이 범인을 차지철로 지목했었습니다. 김치열 법무부 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놈의 X끼가 기고만장 까불더니 결국 일을 저질렀다.”

 

김재규는 육군본부에 도착한 후 벙커에서 계엄령을 내리기 위해 국무총리, 내무부장관, 법무부 장관 등을 소집합니다. 여기서 김재규는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하지만 거기 모인 각료들이 김재규 말을 따르지 않습니다. 계엄 선포의 사유가 뭐냐, 대통령 죽인 범인은 누구냐 하면서 따집니다.

 

결국, 뒤늦게 온 김계원이 정승화에게 김재규가 대통령을 죽였다고 밝히면서 김재규는 체포당합니다.

 

이 10 26사태의 수사를 담당했던 사람이 바로 전두환입니다. 전두환은 사건 수사를 지렛대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습니다.

 

이상 10 26사태 박정희가 서거한 날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독재자 한 명이 죽으니까 또 다른 독재자가 왔습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힘이 있으면 누구든 독재를 할 수 있으니 그렇게 안 되게 견제를 잘해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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