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s 정책 내용에 대해 알아봅시다

3s 정책 내용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3s 정책이란 전두환이 추진한 국가사업인데요. Sex(성), Sports(스포츠), Screen(영화)의 3가지 문화산업을 진흥시켜 국민의 관심사를 정치에서 다른 데로 돌리려고 한 정책입니다.

 

위의 사진은 당시 학생들이 시위하는 모습입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 전두환 3s 정책을 최초 입안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3s 정책은 처음부터 대규모 계획이 수립되고 그것에 따라 일사천리로 추진했다기보다는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3s 정책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다 보니까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1980년 서울의 봄 시절의 좌절 이후 만연한 허무주의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국민의 관심이 3s로 가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3s는 문화적인 것이고요. 전두환 정권은 다른 어떤 정권보다 문화 부분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정치적 의도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피를 마시고 태어난 정권입니다. 그래서 살인자라는 꼬리표가 달려져 있었는데요. 전두환 정권 입장에서는 이것이 너무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이런 것을 좀 완화하고자 국민의 관심사를 정치에서 다른 데로 돌릴 필요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사람들을 숙청하고, 삼청교육대 등을 만들어 사람들을 탄압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두환 3s 정책을 펼쳐 자신들의 취약한 통치 명분을 문화적으로 보강했습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모든 것이 풀린 것은 아닙니다. 1982년 1월 5일 밤 12시 야간통행금지가 풀리고, 성적 표현이 관대해졌지만, 반공과 체제 유지를 위한 검열은 강화되었습니다.

 

 

상업적인 대중문화에 대해 저항하는 다른 대안 문화는 철저히 탄압하였습니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왕이 1년 내내 검투사들 싸움을 시켰습니다. 국민은 그것을 콜로세움에서 계속 지켜봤는데요. 그 왕은 아주 똑똑한 왕이라고 합니다. 대중이 원하는 걸 제공해 줌으로써 집권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프로 스포츠단을 최초로 출범할 때 야구를 먼저 출범할지, 축구를 먼저 출범할지 가늠했습니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 한꺼번에 다 출범할 수는 없었습니다. 전두환은 축구 팬이었다고 합니다. 포지션은 골키퍼였다고 합니다. 근데 야구를 먼저 프로 단으로 출범시켰습니다. 그 이유는 야구는 1970년대부터 이미 프로 스포츠로 출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출범기획서까지 있었습니다. 또 고등학교 야구가 인기였고요. 축구에 비해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프로 단을 출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이상 3s 정책 내용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전두환이 저렇게 노력했어도 결국 국민의 6.10 민주화 운동 덕에 한국은 민주화에 성공하였습니다. 한국이 민주주의 나라가 될 수 있게 노력해 주신 부모님들, 할아버지 할머니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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