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문덕 살수대첩 에 대해 알아봅시다

을지문덕 살수대첩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583년 당시 북부의 돌궐은 수나라를 자주 공격해서 골칫덩어리였는데요. 수나라의 이간질이 성공해 동돌궐과 서돌궐로 갈라집니다. 그래서 돌궐이 수나라 세력 밑으로 들어가는 형국이었는데요. 이래서 수나라는 북부에 안정을 되찾습니다.

 

 

위의 그림은 583년 당시 세계 세력도입니다.

수나라는 당시 세계 최초의 과거제도를 시행하고, 대운하 공사에 성공하는 등의 이유로 아주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국가였습니다. 수나라의 인구수는 589년 400만 호에서 604년 890만 호가 될 정도로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607년 수양제(수나라 황제)가 동돌궐에 순행을 가는데요. 동돌궐 군주가 계민가한의 장막에서 고구려 사신을 만나는 것을 수양제가 봅니다.

 

수나라 입장에서 돌궐은 골칫덩어리였는데요. 그것을 겨우겨우 분열시켜 통제력 안에 둔 게 지금인데요. 그런 돌궐이 고구려와 교류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돌궐과 고구려가 협공하면 수나라에 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수양제 입장에서는 단호하게 고구려 정벌의 의지를 보여줘야 돌궐이 딴생각을 안 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양제가 고구려 사신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영양왕 18년(607년)

“너의 왕이 입조 하지 않는다면 (...) 너의 땅을 토벌하리라”

 

고구려 영양왕은 수양제 입조 요구를 거부합니다. 그러면서 군사와 군량을 비축하며 수와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수나라는 612년 113만 명의 대군을 동원해 고구려에 쳐들어갑니다. 이 많은 군사가 북경에서 출발하는 데 걸린 시간만 무려 40일입니다.

 

668년 고구려 멸망 당시 당에 복속된 고구려 지역 인구는 약 70만 호였습니다. 1호당 5명 정도로 치면 약 350만 명이 고구려의 총인구수입니다. 여기서 이것저것 더하면 총인구수는 400만 명 정도로 볼 수 있고요. 이중 군인은 2~30만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30만 명이 113만 대군을 막아낸 것입니다.

 

수의 군대와 고구려 군대가 처음으로 맞붙은 곳은 요하강입니다. 요하강이 고구려의 1차 방어선인데요. 여기서 한 달간 고구려 군이 막아내다 1만여 명의 사상자가 나와 밀려서 요동성으로 들어갑니다.

 

 

위의 그림이 요동성 위치입니다.

교통적으로 고구려를 쳐들어가려면 요동성을 꼭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수나라는 요동성을 공격한 것입니다. 요동성은 수나라의 1백만 대군을 3개월 동안 끝까지 막아냅니다. 당시 요동 성주가 누구인지는 기록에 없습니다. 요동성이 수나라 군대를 끝까지 막아내 준 덕분에 수나라의 1백만 대군이 정통으로 고구려 침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수나라 군대는 작전을 실행하기 위해 상부에 보고해야 했는데요. 이 보고는 수양제에게까지 해야 했습니다. 근데 요동성과 수양제는 말로 달려도 이틀거리에 있었습니다. 요동성이 수나라 군대를 막아내다 못 버티겠으면 항복 선언을 합니다. 그러면 수나라는 이 보고를 수양제에게까지 하기 위해 가는데 2일 오는데 2일 해서 최소 4일은 있어야 다음 작전이 실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4일 정도의 기간에 고구려군은 요동성 정비를 다 하여 새로 싸우는 방식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요동을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645년 당시 당 태종이 요동성을 정벌할 때 주민이 4만 명 군사가 2만 명 정도가 되었는데요. 수나라의 100만 대군이 공격할 때도 그 정도 숫자의 사람이 있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습니다.

 

 

위의 빨간색 원이 현재의 요양 시 고구려 시절 요동성이 있던 위치입니다.

수나라는 수군도 공격했는데요. 원래 수군의 목적은 수나라 육군이 평양성을 공격하면 군수품 보급과 협공의 목적으로 고구려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수나라 육군이 평양성에 오지 않자, 공에 욕심을 내서 수나라 수군이 단독으로 고구려 평양성을 쳐들어갑니다.

 

수나라 수군은 4만 병력을 조직하여 평양성 공격을 시도합니다.

 

 

위의 구조도가 평양성 모습인데요. 외성, 중성, 내성으로 되어있습니다. 외성은 백성들과 귀족들이 사는 곳이고요. 중성은 관청이 있으니까, 관리들이 사는 곳입니다. 내성은 왕이 살던 곳입니다.

 

 

수나라 수군의 공격으로 평양성 외성이 뚫립니다. 그래서 수나라 군대는 약탈을 시작하는데요. 약탈하게 되면 군대 대오가 흐트러집니다. 이때 고구려군이 매복 공격을 하여 수나라 수군을 박살 냅니다.

 

이때 수나라 육군은 요동성에 너무 붙잡혀 있으니까 안 되겠다 싶어 별동부대 305,000여 명을 평양성으로 급파합니다. 이들은 자기가 먹을 식량을 직접 들고 갔는데요. 그러니까 무거워서 식량을 땅에 묻고 몰래 버리고 했답니다. 그렇게 평양성에 가까워지는데요.

 

이때 을지문덕 장군이 거짓으로 항복하여 수나라 진영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수나라 군대의 상황을 알기 위해 적 진영에 들어간 것입니다. 고구려 영양왕 다음으로 높은 사람이 을지문덕이라 을지문덕이 영양왕과 얘기한 후 직접 항복하여 들어간 것입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대의 동태를 살피고 수나라 장수인 유사룡이 풀어줘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수나라 군대는 을지문덕을 풀어주고 이게 아닌가 싶었나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할 얘기가 있다고 을지문덕을 불렀는데 을지문덕이 안 갔습니다.

 

아래는 삼국사기 열전 을지문덕 글입니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군사가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보고 그들을 지치게 만들고자 매번 싸울 때마다 쉽게 패배하였다.”

 

수나라 별동대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식량도 별로 없어서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이용하여 을지문덕은 조금 싸우는 척하다가 도망가고 또 싸우는 척하다가 도망가고 또 싸우는 척하다 도망가고 하는등의 행동을 계속하여 수나라 군대를 더 지치게 하였습니다.

 

수나라 별동대는 평양성 근처까지 오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평양성의 높은 성벽을 보고 저건 함락하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때 을지문덕이 군사를 돌리면 고구려 왕이 수나라에 입조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수나라 군대는 안 그래도 싸울 힘도 없고, 싸워도 잘 안 될 것 같고 하는 상황에서 고구려가 저렇게 말하니까 얼씨구나 하고 철군합니다.

 

수나라 별동대가 살수(청천강) 반 정도 지났을 때 을지문덕이 수나라 별동대 뒤통수를 치는 을지문덕 살수대첩이 이루어져 수나라 군사 태반이 죽습니다. 처음 수나라 별동대의 군사는 305,000여 명이었는데요. 마지막 생존자 숫자는 2,700여 명이었습니다.

 

 

살수는 강 이름인데요. 청천강이 살수입니다. 을지문덕 살수대첩이 일어난 장소가 바로 위의 빨간색 원인 청천강입니다.

강의 물을 막으려면 엄청난 규모의 토목공사가 있어야 하는데요. 당시 전쟁 중이라 그렇게 청천강의 물을 막는 공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다른대서 살수의 물을 막았다가 한 번에 보내 수나라 군대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는 거짓입니다.

 

수양제는 7월 25일 살수대첩 다음날 철군을 시작합니다.

 

이후에도 수나라는 2번 더 고구려에 침공하는데요. 모두 실패합니다.

 

을지문덕 장군 관련해서는 딱 을지문덕 살수대첩 관련 기록만 있고 그 이외의 기록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을지문덕 장군 모습 상상도입니다.

 

수나라는 고구려 침공 때 너무 대규모로 패배해 나라가 휘청해서 30년 만에 멸망합니다.

수양제 릉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 있습니다.

“요동(고구려)에서 일을 벌이다 천하를 잃었다.”

 

이상 을지문덕 살수대첩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고대 시대 때 고구려가 없었으면 한민족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민족의 방파제가 되어준 고구려분들 감사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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