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전투 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 알아봅시다

안시성 전투 의 역사적 진실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조인성 주연의 안시성이란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봤는데요. 재밌었습니다. 여기서는 영화와 비교해 가며 안시성 전투의 역사적 진실은 어땠는지 살펴보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위의 지도는 당시 고구려의 성 위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나라 군대는 먼저 요동성을 공략해 성공하고요. 그다음 백암성을 공략해 성공합니다. 3번째로 안시성을 공격한 것입니다.

 

 

645년 2월 당나라 20만 대군이 고구려 원정에 나섭니다. 여태까지 한민족이 싸운 외국 군대 중 저 때 당나라 군대가 제일 강한 군대였다고 합니다. 당나라는 당시 최전성기를 맞이한 데다 서쪽 지역의 다른 나라 군대와 싸운 실전 경험도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저 당시 당나라 군대도 최강이었습니다. 예전부터 있는 오합지졸을 가리켜 당나라 부대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근거는 없는 말입니다.

 

 

위의 그림이 당 태종 이세민의 모습입니다.

이 당나라 군대는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이 이끌었습니다. 이세민은 598년생이고요. 당나라 고조 이연의 둘째 아들입니다. 형제를 살해하고, 아버지를 감금한 후 황제 즉위를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당성이 부족한데요. 이 정당성을 보완하고자 역사서에는 이세민의 흠을 말하는 문구가 잘 없습니다.

 

이세민이 고구려를 공격한 명분은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당시 고구려는 아버지의 직위를 아들이 물려받는 관습이 있었는데요. 연개소문 집안은 고구려 왕가 다음의 최고 집안이었습니다. 근데 연개소문이 포악하다는 이유로 다른 고구려 귀족 사람들이 연개소문이 최고 직위를 맡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변두리로 보내려고 했는데요. 이것을 알고 연개소문이 642년 열병식을 한다며 고구려 귀족들이 모이게 했는데요. 그 자리에서 열병식을 하다 고구려 엘리트 귀족 100여 명을 모두 죽입니다. 그다음 고구려 제27대 왕 영류왕을 찾아가 영류왕도 죽이고, 보장왕을 허수아비 왕으로 세웁니다. 그러면서 실권은 자기가 모두 갖는 사건이 일어나는데요. 이 일을 핑계 삼아 이세민이 쳐들어온 것입니다. 이세민은 본인도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감금해 가며 황제가 된 인물인데요. 그냥 고구려를 접수하고 싶었는데 이런 핑계를 댄 것입니다.

 

645년 5월 10일 이세민의 당나라 20만 대군은 요동성에 도착합니다. 전사한 고구려군만 1만여 명인데요. 그러면서 요동성은 보름 만에 당나라군에 함락됩니다.

 

연개소문이 엘리트 고구려 귀족 100여 명을 죽이면서, 엘리트 두뇌들이 대거 사라져 요동성이 쉽게 함락되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 후 당나라 군대는 백암성을 공략해 항복을 받아냅니다.

 

그다음 안시성 전투가 일어난 것입니다.

 

 

국사 교과서에도 그렇고 많은 사람이 당시 안시성주 이름을 양만춘으로 아시는데요. 역사서에는 그냥 안시성주라고만 쓰여 있고 이름은 쓰여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당시 안시성주의 이름은 모릅니다. 명나라 때 웅대목이 지은 당서지전통연의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그 소설에서 안시성주의 이름을 ‘양만춘’이라고 가상으로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전해져 진짜처럼 안시성주 이름이 양만춘이 된 것입니다.

 

또 영화 안시성에서는 설현이 이끄는 여군 부대가 나오기도 하는데요. 토르에 나오는 발키리 부대 같죠. 그런 여성 부대도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군이 있던 것은 확실합니다. 가야 시대 무덤 중 여자 유골인데 전투 무기나 갑옷들과 같이 안장된 무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고구려에도 여자 군인이 있었을 것으로는 확실시하는데요. 그렇게 여자로만 이루어진 군대가 있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 부대가 공략이 힘들어 2달 동안 옆에 높은 토산을 쌓기도 하는데요. 영화에서는 그 토산 밑으로 땅굴을 파 폭파해 토산이 무너지는 것으로 나옵니다. 실제로는 왜 무너졌는지 기록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고대 역사 자료는 일제 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많이 소실되었습니다. 일본이 제대로 된 고대 역사가 없다 보니 우리나라 고대 역사도 다 소실 시킨 것인데요. 그래서 대부분의 고대 역사는 중국 역사서를 통해 알아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 역사서는 자기네들이 실패한 사건이니까 자세히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토산이 왜 무너졌는지는 기록에 없어 알지 못합니다.

 

당 태종이 화살에 맞아 한 쪽 눈을 잃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이것은 그냥 그 정도로 당 태종이 치명적 피해를 보았으니까, 허구를 재미로 입힌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만 당나라가 후퇴할 때 다시 늪지대를 건너가야 해서 당 태종도 같이 장작을 나르는 등 개고생한 것은 맞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 준비를 하며 649년에 또 쳐들어오려고 하는데요. 그전에 죽습니다. 아무래도 고구려와의 안시성 전투에서 너무 고생하여 건강이 안 좋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상 안시성 전투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전쟁이 나며 나만 혼자 다른 데로 도망가서 몰래 숨어 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 수도 있는데요. 고구려 국민은 그러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싸웠습니다. 이것은 고구려가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국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우리나라도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자기 목숨을 바쳐가며 지켜갈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구려 국민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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