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이 어땠는지 알아봅시다

태종 이방원 이 어땠는지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다들 조선 왕 중에서 한 성깔 하던 왕을 꼽으라고 하면 태종 이방원은 꼭 얘기가 나올 것입니다. 그 정도로 피의 통치를 했는데요. 여러 사건을 보며 구체적으로 태종 이방원이 어땠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입니다. 이성계 실제 모습인데요. 이성계 아들인 이방원은 이성계와 닮았다고 기록에 있습니다. 그러니 태종 이방원 생김새도 대충 위의 그림 같은 모습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정도전 남은 등 조선의 개국공신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며 왕이 된 인물입니다. 또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이복동생 방석을 제거하고, 친형인 방간을 유배시키며 왕으로 다가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태종 이방원을 킬방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유명한 무인 출신입니다. 그래서 집안이 무예에 능통했는데요. 이방원은 고려시대에 이성계 아들 중 유일하게 문과 과거에 급제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행정고시보다 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그 정도로 공부 머리도 좋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태조 이성계의 가계도인데요. 태종 이방원은 정비의 5번째 아들입니다. 저기 남자 형제가 7명 있는데요. 다 제치고 자기가 왕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계비 신덕왕후 강 씨는 이방원에게 새엄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사이가 많이 안 좋았습니다. 신덕왕후 강 씨는 당연히 자기 아들을 왕에 앉히려고 했는데요. 이것 때문에 갈등이 많이 깊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조선 역사에 있어서 자발적으로 자신이 살아있을 때 왕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준 유일한 왕입니다. 세종에게 물려줬는데요. 군사적인 것만 자기가 관리하고 다른 모든 사항은 세종에게 맡기며 왕에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선 상왕의 위치에 있으면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1418년 11월 25일 세종 즉위년 영의정이자 세종의 장인인 심온에게 체포 명령이 떨어집니다.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된 세종의 장인인 심온인데요. 의금부(현재의 검찰청)로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당한 후 결국 사형을 당합니다. 그리고 심온의 아내와 자식들은 노비로 전락합니다. 그 세종의 아내이며 심온의 딸이 바로 왕비 소헌왕후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데로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병권만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고, 병권 관련 보고도 자기에게 하라고 했는데요. 강상인이라는 인물이 병권 관련 보고를 이방원에게 하지 않고, 세종에게 보고합니다. 그래서 강상인을 심문하자 그 뒤에 바로 심온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의 장인인 심온 가족이 태종 이방원에 의해 파탄이 났습니다.

 

 

또 전에 심온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그를 배웅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데요. 너무 많이 몰려 장마당에 사람이 없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것을 이방원이 봤는데요. 이런 이유로 견제를 하기 위해 사돈인 심온을 제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은 이렇게 사돈 집안을 풍비박산 낸 것뿐만 아니라 자기 부인인 원경왕후의 동생들을 모두 숙청하기도 했습니다.

 

태종 16살, 원경왕후 18살에 결혼했는데요. 원경왕후 집안이 태종이 왕이 되게 한데에 1등 공신입니다. 왕자의 난이 있을 때도 태종은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없었는데요. 원경왕후 집안사람들이 무기를 구해와 보급하는 등 여러모로 태종이 왕이 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그러나 결국 토사구팽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태종실록 14권 태종 7년(1407년) 7월 10일

“전하께서 선위를(왕을 물려줌) 하려 할 때 민무구(원경왕후 동생) 등은 스스로 다행이 여겨 기뻐하는 빛을 얼굴에 나타냈으며….”

 

태종 이방원이 왕을 선위하려고 할 때 원경왕후 동생들 얼굴빛이 좋았다고 해서 다 죽인 것입니다. 1410년 3월 17일 민무구 민무질 형제에 독약을 내려 죽였고요. 1416년 나머지 두 민씨 형제도 교수형에 처해 죽였습니다. 그래서 부인인 원경왕후와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합니다.

 

위의 가계도에 보면 나오는 태조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 씨와 왕권 관련 일 때문에 갈등이 깊었는데요. 청계천을 처음 조성한 사람이 태종 이방원입니다. 이방원이 청계천을 조성하는데 다리를 만들 돌이 부족하자 광통교에 선덕왕 후 강 씨 무덤에 있던 돌을 가져와 그걸 재료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이 청계천 광통교 모습인데요. 저렇게 일반 다리인데 문양이 많이 들어간 돌들이 있습니다. 저게 다 선덕왕 후 강 씨 무덤에서 가져와 사용한 돌들입니다. 이방원의 뒤끝 다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태종 이방원이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들들 때문인데요. 이렇게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이방원이 아들들이 잘못되거나, 죽거나 하면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이방원은 오로지 아들들에게만은 유하게 대했습니다.

 

이상 태종 이방원이 어땠는지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이래서 누군가를 도와주더라도 그 사람이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면 나를 배신할 사람인지 아닌지 체크해가며 성심성의껏 도와줘야 합니다. 저렇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줘도 토사구팽 할 사람은 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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