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세조 의 계유정난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수양대군 과 세조 는 같은 사람입니다. 왕이 아닐 때를 수양대군 으로 부르고 왕이 되었을 때를 세조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수양대군 세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제일 중요했던 사건이 계유정난입니다. 계유정난은 수양대군 세조 가 왕이 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왕위를 찬탈한 사건입니다. 사육신 이야기도 바로 수양대군 세조 의 계유정난 사건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위의 가계도는 수양대군 세조 의 가계도입니다. 밑에 그림은 수양대군 세조 의 생김새 정보를 듣고 상상해서 그린 수양대군 세조 의 모습이라고 합니다.(합천 해인사 존상도) 수양대군 세조 어진은 보관하던 곳이 불에 타 현재 남아있지 않습니다.
수양대군 세조 가계도에 보는 것처럼 수양대군 세조 는 세종의 2째 아들입니다. 세종의 첫째 아들인 문종이자 수양대군 세조 형이 먼저 왕위를 가졌는데요. 너무 빨리 돌아가서 문종의 아들 단종이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릅니다. 당시 단종은 어머님도 산후 후유증으로 일찍 돌아가셔서 수렴첨정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어린 단종을 작은 아버지인 수양대군 세조 가 죽이고 자신이 왕위를 차지 한 사건이 계유정난입니다.
계유정난(癸酉靖難)의 계유는 1453년 계유년에 있어난 일이란 뜻이며, 정은 편안히 하다 정, 난은 어렵다 난을 사용합니다. 계유년에 어렵던 시기를 편안히 했다는 뜻인데요. 승자인 수양대군 세조 기준으로 글자가 만들어지고 공고히 되었던 것을 현재 역사학자들도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주의 하실 것은 어렵다 난 이니 계유정란 으로 쓰시면 틀린 답이 되겠습니다. 계유정난입니다.
수양대군 세조 의 계유정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 세조가 밤에 김종서를 찾아갑니다. 김종서는 뛰어난 문신 출신 장수로 수양대군 세조 반대파중 핵심적인 인물입니다. 수양대군 세조 가 김종서를 찾아가 편지를 주고 김종서가 편지를 읽을 때 뒤에서 철퇴로 내려 쳐 죽입니다. 실제로는 김종서가 저때 죽지 않고 겨우 살아서 한양을 배회하다 둘째 아들 처가댁에 숨었다가 나중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1453년 10월 10일 단종실록)
수양대군 세조 는 그 후 궁에 들어가 궁을 접수했습니다. 이미 계유정난 이전에 군 병사들을 포섭하고 궁녀나 내시 같은 많은 인물들을 포섭한 상태였습니다. 수양대군 세조 은 그 상황에서 단종에게 김종서를 죽였다고 보고하고 신하들을 궁에 들어오게 명을 내리게 합니다. 그래서 단종이 신하들을 궁에 들어오게 명을 내리자 살생부를 보며 들어온 신하들 중 반대세력을 모두 죽이고 자기편은 자기편에 들게 했습니다.
수양대군 세조 의 계유정난 의 공신은 43명이 있는데요. 그 중 무신 19명, 환관 2명, 천민 출신 1명, 궁중 시녀 다수(궁중시녀는 공신은 아니고 그냥 상으로 집같은거 받음)등이 있었습니다. 저렇게 중요 위치 인물들을 미리 포섭하여 정보를 빼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수양대군 세조 는 그 후 바로 왕위에 안 오르고요 처음엔 영의정부사나 판이병조사, 병마도통사 같은 중요 핵심 관직을 다 차지합니다. 그 후 단종에게 압박을 계속 해 단종이 ‘왕 하시지요.’ 라고 말하며 왕위를 양보하게 하여 왕이 됩니다.
단종은 처음엔 유배되었다가 나중엔 사약을 내려 죽입니다.
이상 수양대군 세조 의 계유정난 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권력은 저렇게 피도 눈물도 없는 거 같습니다. 이런 점을 알고 우리나라 권력자들도 잘 지켜보며 살아야겠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