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혜성 발견자 핼리의 업적

   핼리혜성의 발견자 핼리의 업적을 적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다큐 제목은 코스모스 3편입니다.

 

핼리는 뉴턴을 도와 현대과학의 시작을 열어준 책인

프린키피아를 출판하는데 굉장히 큰 공헌을 한 인물이지요.

뉴턴도 뉴턴이지만 핼리가 없었으면 인류의 과학 발전은

더 뒤쳐졌을 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핼리 얼굴과 핼리혜성 사진 그리고

핼리가 제안한 태양의 시차관련 제안서입니다.



핼리는 단순히 뉴턴을 도운 사람만이 아니라

한명의 대단한 과학자이기도 한데요

오늘 그의 업적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프린키피아가 출판된 후 핼리는 왕의 명령을 받아

3번의 해양 원정을 이끌었습니다. 영국 해군을 돕기

위한 과학 조사단 이었답니다. 핼리는 그 기회를 이

용해 최초의 지구 자기장 지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핼리는 잠수정을 설계

하기도 했고 자신의 발명을 이용해 해난구조 사업을

성공 시켰습니다. 핼리는 잠수정 같이 위험 할 수 있는

발명품을 직접 실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핼리는 기상도도 발명 했습니다. 그가 탁월풍(어느 지역에 일정

기간 동안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바람의 방향)을 표시하려고

만든 기호는 오늘날에도 쓰입니다.

 


또 핼리는 인구통계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런던과 파리의

출생, 결혼, 사망, 인구 밀도를 비교 했습니다. 핼리는 파리의

둘레를 직접 걸어 다니며 도시의 크기를 직접 파악 했습니다.

그는 성인 남녀가 반 정도를 출산에 실패하므로 인구를 유지

하려면 한 부부가 4명씩 낳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태양계의 규모를 알려준 사람도 핼리입니다.

그는 지구와 태양의 거리를 잴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금성이 태양면을 지나가는 시간을 정확히 측정하는 겁니다.

 


항성(천구상의 위치가 거의 변하지 않는 별로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고온의 천체)이 늘 같은 자리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도 핼리입니다.

에드먼드 핼리는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들이 밝은 별들을

관측한 기록을 자세히 조사하고 1800년 전의 그 기록과

자신이 관찰한 기록을 비교하여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제일 유명한 핼리 혜성 얘기입니다.

핼리는 1472년에서 1698년 사이에 유럽에서 기록된

혜성 관측 자료를 전부 찾아냈습니다.

핼리는 책과 지성만으로 이 모든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핼리는 각 혜성의 관측 기록을 보고 그 혜성이 지나간

경로의 모양을 알아냅니다.

혜성이 긴 타원형 궤도로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 핼리가 뛰어난 수학적 능력으로 이룩한

쾌거 이었습니다.

 


그가 또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1531, 1607, 1682년에 목격된 혜성이

모두 같은 혜성이라는 겁니다.

76년 만에 돌아오는 혜성 그게 바로 핼리 혜성

입니다. 그 당시에 과학으로 예언을 할 수 있었

던 것입니다.

 


핼리는 그 후로도 놀라운 업적을 많이 세웠고 끊임없이 일했습니다.

핼리는 85세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임종 직전 포도주를 한잔 청해 기쁘게 마신 뒤

마침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에드먼드 핼리씨도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뉴턴을 도운 것뿐만 아니라 자기 혼자서도

인류 과학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네요.

정말 존경받을 만한 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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