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 어리 사건에 대해 알아봅시다

양녕대군 어리 사건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앙녕대군은 태종의 아들로 첫째 아들입니다. 그래서 별일 없는 한 왕이 될 수 있었는데요 공부를 너무 안하고 여색을 탐해 사고를 많이 쳐가지고 세자자리에서 폐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항이 한민족에게는 굉장히 큰 득입니다. 양녕대군이 폐위되는 바람에 왕이 되신 분이 바로 세종대왕님이십니다. 여기서는 양녕대군의 여자문제인 양녕대군 어리 사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양녕대군 가계도()와 양녕대군 어리 사건을 다룬 드라마 스샷(아래)입니다.

1416년 양녕대군은 운명의 여인 어리를 만납니다. 하지만 어리는 한 사대부의 첩이었습니다.

그러나 양녕대군 어리 는 이런 금지된 관계인데도 만남을 계속 합니다. 이런 사실을 양녕대군 아버지인 태종 귀에까지 가고 태종은 굉장히 노합니다. 그래서 어리는 궁밖으로 쫓겨나고 양녕대군은 반성문을 쓰고서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양녕대군 어리 서로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양녕대군은 장인 김한로의 도움을 얻어 어리를 다시 세자궁으로 불러들입니다. 태종의 눈을 피해 양녕대군 어리 는 아이까지 낳습니다. 하지만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양녕대군은 양녕대군 어리 사건이외에도 여자 문제를 좀 일으켰습니다. 17살에는 기생 봉지련과 스캔들이 일어나고, 20세에는 기생 소앵과 스캔들이 일어나고, 22세에는 기생 초궁장과 스캔들이 일어납니다. 초궁장은 큰아버지 정종 첩이었는데도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양녕대군 어리 사건이 문제가 된 것은 어리가 그냥 처녀가 아니라 사대부의 첩이어서 그랬던 것입니다. 문제가 되었는데요. 여론이 굉장히 안 좋게 바뀌었습니다. 양녕대군을 공부안하고 여자문제 많이 일으킨다고 폐위하라는 상소문도 아버지인 태종한테 굉장히 많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태종은 계속 양녕대군이 어리를 못 만나게 했는데요. 그런 움직임이 끝나면 바로 양녕대군 어리 는 다시 만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어리를 자꾸 혼 내키니까 어리는 결국 그런 비난을 못 이기고 목 매달아 자살을 합니다.

 

이런 양녕대군 어리 사건 등으로 양녕대군이 폐위되고 충녕대군이 세자가 됩니다. 바로 그 충녕대군이 세종대왕님이 되십니다. 폐위된 후 양녕대군은 정치를 안 하고 그냥 궁밖에서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런 양녕대군을 세종이 왕이 되어서도 이따금씩 찾아뵙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정상적으로 세종대왕님이 왕이 되 시긴 했지만 양녕대군이 적장자라 나쁜 마음을 먹고 왕이 되려고 했으면 피바람이 일어났을 텐데 그런 거 없게 양녕대군이 처신을 잘 한 면도 있습니다.

 

이상 양녕대군 어리 사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저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많이 있겠지요. 현실 잘 판단하며 사랑을 해도 해야 할듯합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제대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힘든 부분이지요. 잘 판단하며 행동합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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