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집현전 에 대해 알아봅시다

세종대왕 집현전 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집현전은 조선시대에 있던 학문 연구기관인데요 학문을 연구하기도 하고 정책을 내놓기도 하는 지금의 싱크탱크 같은 역할을 하던 곳 이었습니다. 당시 고려시대에도 집현전이 있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운영되지는 않았고요 세종대왕에 이르러서야 집현전 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꾸려졌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빨간색 원안이 집현전의 위치인데요. 경희루라는 연못 바로 옆에 위치한 것을 보실 수 있으십니다. 학자들이 연구하다 연못 구경하며 쉬라고 배려하기 위해 저기에 선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파란색 원이 사정전이라고 세종대왕이 주로 집무를 보던 곳인데 거기와 가깝기도 했습니다. 위의 아래 사진은 집현전 외부 모습입니다.

 


세종대왕 은 집현전을 학문연구기관이자 참모기관으로 활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재들을 모아놨는데요 3년에 33명 뽑는 시험에서 5등 안에 드는 인재들이 절반이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치면 사법고시 합격하고 거기서 판사로 되신 분들만 모아놓은 정도입니다. 세종대왕 집현전 은 박팽년, 정인지, 신숙주, 성삼문 같은 인재들이 대거 있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가 조선건국 26년째쯤 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인재들의 세대교체가 되기도 하고 왕자의 난, 역성혁명 등으로 먼저 있던 인재들이 많이 죽고 해서 인재들이 모자라던 시기 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 집현전을 중심으로 인재들을 영입하고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세종대왕 집현전 운영 목적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인재에 투자해 유교국가 기틀을 조성

2. 文風(학문하는 풍조)을 진흥

 

집현 이란 말뜻이 현명한 사람들을 모으다란 뜻입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세종실록 143432집현전 관원들이 모두 싫어하고, 대간과 정도로 전출을 희망하는 자가 많다.”

 

집현전은 한번 들어가면 장기근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집현전 내에만 있다 보니 승진도 느리고, 공부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공부하면 24시간이 스트레스입니다. 일을 하면 딱 일하는 시간만 끝나면 자유로운데 공부는 24시간 공부를 하던 안하든 스트레스라 이런 점으로 인해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들이 장기근속을 한 이유는 국가정책이 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 10년 이상 장기근속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들에게 당시로써는 굉장히 귀한 귤도 쌓아놓고 먹을 수 있도록 주고, 집현전 내에서 술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헌부에게 집현전은 감찰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또 사가독서 제도라고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들이 집에서 몇 달씩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유급휴가제도도 운영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세종대왕의 배려였습니다.

 

사가독서 제를 할 때는 처음엔 집에서 했지만 성종 때부터 독서당을 만들어서 사가독서 제를 했는데요. 지금의 서울 옥수동 에 동호독서당을 만들었는데요. 이황, 이이, 유성룡 등이 그곳에서 사가독서 제를 이용하였습니다. 지금의 동호대교가 동호독서당에서 따온 것입니다. 거기서 학자들이 공부하다 배타고 압구정 가서 놀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출신 중에 현실정치계로 들어와서 업적을 이루신 분들도 많은데요. 노사신 분 같은 경우는 영의정까지 오르시고, 서거정 분 같은 경우는 동국여지승람이나 동국통감 등을 편찬하셨습니다. 신숙주, 사육신, 생육신에도 세종대왕 집현전 학자 출신들이 대거 있습니다. 15세기 중반까지는 세종대왕 집현전 출신 학자들이 조정에 진출해 조선을 이끌었습니다.

 

이상 세종대왕 집현전 에 대한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나라의 정책과 운영은 저런 싱크탱크에서 나와야지요. 누군가의 돈이나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요 학문을 사랑하시고 계속 노력하며 조선을 이끌어주신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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