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에 대해 알아봅시다

정도전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설계하신 분입니다. 조선 첫 왕은 이성계입니다. 그런 이성계의 힘에 사상적으로 결합하여 조선이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설계 하신 분이 바로 정도전입니다. 조선은 개국할 때 당시로써는 굉장히 진보적인 국가였습니다. 지배층만 잘사는 나라가 아니라 백성들이 잘사는 나라에 초점을 맞추고 만든 나라라 그런 것입니다. 정도전은 당시 왕 중심 국가가 아니라 재상 중심 국가로 만들려고 했는데요. 요즘으로 치면 총리가 있는 민주주의 나라입니다. 이런 진보적인 생각으로 조선을 설계하신 분이 바로 정도전입니다.

 

 

위의 왼쪽 초상화가 정도전이고, 오른쪽 초상화가 이성계입니다.

정도전은 1342년 충청북도 단양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그 후 고려 시대에 과거급제하여 성균관에도 계셨는데요. 망가진 고려를 바로잡으려고 하지만, 고려의 권문세족 힘에 눌려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이인임 같은 고려 권문세족과 대립하다가 유배까지 갈 정도였습니다.

 

 

정도전은 1375년 나주 거평부곡 소재 동으로 유배하러 가는 데요. 3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합니다. 부곡이면 천민들이 사는 거주지입니다. 그런 곳에 가서 보니 백성들이 너무 비참하게 사는 것을 본 것입니다. 또 백성들이 생각 보다 모르지 않고, 알 것은 다 아는 것을 봤습니다. 정도전 삼봉집에는 ‘황연’이라는 노인과 교유한 기록만 나옵니다.

 

이런 것을 보며 정도전은 인간적으로 단련을 합니다. 유배 기간에 백성들이 힘들게 사는 것을 보고, 또 그들에 대한 애심이 생기면서 민본정치에 눈을 뜨고, 혁명도 생각하게 됩니다. 유배를 겪으면서 정도전만큼 변한 사람도 드물다고 할 정도입니다.

 

정도전이 쓴 답전부라는 글에 보면 농민들이 굉장히 지혜롭다면서, 백성들이 무지한 게 아니라 이런 사람들로부터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이야기했습니다.

 

정도전은 조선을 개국한 사람입니다. 고려 입장에서 보면 역적인데요. 그에 반해 정몽주는 고려의 마지막 충신입니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이색이라는 분의 밑에서 같이 동문수학한 사이입니다. 그리고 절친이기도 했는데요. 정도전은 조선을 개국한 사람이고, 정몽주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고려의 마지막 충신입니다. 그만큼 대립도 많이 했는데요. 결국, 정몽주는 이성계 아들인 이방원이 죽입니다. 그래서 정도전이 조선을 개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맹자의 이론 중에 역성혁명이란 것이 있습니다. 왕의 덕이 부족하면 왕조의 교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론인데요. 정도전도 이 역성혁명이론에 기초하여 조선을 개국한 것입니다. 그런 정도전에게 맹자의 책을 추천해준 사람이 바로 정몽주이고, 이성계를 소개해준 사람도 바로 정몽주입니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조선을 개국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이성계 무력을 이용해 권력만 잡고 그것을 이용해 백성들을 위한 개혁을 하려고 했는데요. 일이 돌아가다 보니까 조선 개국까지 한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태조실록, 태조 5년 7월 19일 “정도전의 장고에 의하면, 나이는 55세이고 판삼사사의 직에 있사온데 현재 복창과 각기병이 있다 합니다”

 

각기병 증상 중의 하나가 무기력증인데요. 정도전은 한양의 도성들을 설계하셨고요. 성들 이름까지 다 지으셨습니다. 소지문, 돈의문, 숭례문, 흥인문 같은 이름들 다 정도전이 지은 것입니다. 또 조선의 기본 정치 시스템을 밝힌 조선경국전을 집필하고, 고려 국사를 집필, 군사의 진법훈련 지침서 집필 등을 하셨습니다.

 

조선을 개국했을 때 수도는 개성이었는데요. 이성계가 천도를 강력히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정도전이 한양으로 천도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설계도 한 것입니다.

 

당시는 풍수지리가 지배적인 사상이었는데요. 그래서 대부분의 신하가 풍수지리를 기본으로 수도를 이야기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도전은 정치는 땅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태조실록, 태조 3년 8월 24일 “(한양은) 사방으로 통하는 도로의 거리가 고르며 배와 수레도 통할 수 있으니 여기에 영구히 도읍을 정하는 것이 하늘과 백성의 뜻에 맞을까 합니다.”

 

정도전도 결국 이방원이 죽이는데요. 제1차 왕좌의 난이라고 하지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정도전은 재상 중심의 국가 시스템을 원했고, 이방원은 왕 중심의 국가 시스템을 원했습니다. 둘의 타협점은 없었는데요. 그래서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인 것입니다.

 

정도전은 측근들과 술을 마시다가 이방원이 갑자기 와서 죽였다고 합니다.

 

이상 정도전에 대해 알아보는 포스팅을 하였습니다. 미국도 국가 건립 초기부터 뼛속까지 청교도인 분들에 의하여 집권층 중심의 나라가 아니라, 일반 국민 중심의 나라를 지향에서 지금까지 왔다고 하는데요. 우리는 미국보다도 더 빨리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이방원은 태종이 되고, 왕 중심의 국가 시스템인 것만 빼고 대부분 정도전이 설계했던 국가 시스템을 받아들였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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